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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9

10-2. 몽골이 체질 여행사에서 일찍 오기 힘들다고 한 덕분에 꽉 채운 1박 2일을 보내고 나왔다. 비 오는 어젯밤 내내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역시 변덕스러운 몽골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곳이다. 오늘은 어제 비 맞으며 말을 타느라 보지 못했던 천진벌덕(Tsonjin Boldog) 기마상에 오늘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님이 오셔서 날 데려다 주기로 했다. 보자마자 나한테 차비를 달라는 둥 가이드비를 달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마주친 회사의 다른 분 덕분에 잘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보자마자 돈 얘기를 꺼내는 게 기분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런 분과 1:1로 있어야 하다니. 어쨌든 날씨도 좋고 기왕 온 김에 천진벌덕 기마상도 보고 가면 나쁠 거 .. 2023. 11. 12.
10-1. 구름 맛집 몽골 새벽녘에 별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눈을 몇 번 떠봤지만 게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다시 잠들길 몇 차례. 잦아든 빗소리에 희망차게 눈을 떴을 땐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신나서 밖을 봤지만, 지금은 여름. 머지않아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다. 게르에서 자는 마지막 기회라 하늘 가득한 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샛별 하나만 한쪽에서 반짝일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그래도 한 쪽 하늘이 열리는 것 같길래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봤는데(캠프에선 다른 할 일도 없다), 야속하게도 몽골의 하늘은 나에 그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손님이 나 하나뿐이었고, 울란바토르에서 특.. 2023. 10. 29.
9-4. 밤에 게르에서 혼자 하루가 유난히 길었다. 당장 하고 싶은 건 역시 뜨거운 물로 씻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 한국에서는 사소한 일상이지만 몽골에선 그렇지 않다(플래그🚩). 온수가 있으면 감사해야 하는 곳, 공용 샤워장에 옷을 가지고 가서 씻다 보면 옷이 눅눅해지는 곳이 바로 몽골이다. 게다가 밖에는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나가기가 번거로워서 비가 잦아들고 난 뒤에 씻으러 가고 싶었지만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기엔 너무 추워서 더 기다릴 수 없어 길을 나섰다. 알고 보니 날씨 때문인지 휴가 성수기가 지나고 있기 때문인지 캠프 전체에 손님이 거의 없는 둣했다. 여행사에서도 알아서 놀라고 나를 두고 갔고, 내일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비가 오니 어차피 캠프파이어는 없었겠지만 한 명만 예약하면 손해를 본다.. 2023. 10. 22.
7-2. 그렇게 몽골인이 된다 점심은 근처에 있는 몽골 식당에서 먹었다. 식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몽골은 전통 요리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이제는 대부분의 음식을 한 번씩 맛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극강의 경험주의자라, 식당마다 메뉴판 도장 깨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시골이라 그런 건지 가는 식당마다 메뉴판에 있는 메뉴를 다 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메뉴판을 보고 어떤 메뉴를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뒤에야 주문할 수 있는 것이다. 시골이라 식재료 조달이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해 본다. 식당마다 주문할 수 있는 건 비슷했다. 쵸이왕(볶음면)이랑 고야쉬(굴라쉬), 호쇼르 같은 것. 오늘의 새로운 요리는 (또) 양고기로 끓인 몽골식 칼국수, 고릴테 슐. 몽골어(키릴 문자)로 된 메뉴판은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2023. 9. 22.
5-3. 따로 또 같이 신나게 보드게임을 하고 나서 비는 그쳐가고 있었지만 친구들은 낮잠으로 체력을 충전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캠프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잠은 차에서 자면 된다는 주의라 낮잠은 필요 없는 체력왕. 캠프 옆 언덕 꼭대기에 소욤보(몽골 국기)가 꽂힌 커다란 어워가 있는 걸 봤었다. 매일같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좁은 게르에서 잠을 청했더니 몸이 찌뿌둥해지기도 했따. 가까이 가보니 오를만 하다고 생각해서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상 발을 디디고 나니 슬리퍼를 신고는 미끄러질 것 같아 걱정스러워서 발에 힘을 꼭 주고 걸어야 했다. 좀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몽골은 어디든 들판에 가축들의 똥이 널려 있는데(때에 따라서는 사람 똥도 있는 곳도 있겠지..) 슬리퍼를 신.. 2023. 9. 12.
5-2. 물 만난 여행기(테르힝 차강 호수) 일찌감치 쉬려던 계획과는 달리 오후 2시쯤이 되어서야 오늘의 캠프(Maikhan Tologoi)에 도착했다. 푸르공을 타고 다니면서는 예상 시간을 지킨 적이 없는 것 같다. 2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는 일은 일상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몽골 사람들에게 철저한 시간 개념이 없다는 말이 절절히 와닿았다. 어느덧 시계조차 잘 보지 않게 되기도 했고 잘 놀고 돌아오는 길이라 늦어진 데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트레킹을 하고 난 뒤에 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배가 몹시 고팠다. 이번 캠프는 호숫가 바로 앞에 있어 뷰가 아주 좋았고 게르도 널찍하고 깔끔했다(물가라 날파리는 많았다). 홉스골에서는 캠프가 더 크고 우리 게르가 안쪽에 있어서 숙소에서 호수가 보이지는 않았는데, 여기서는 호숫가에 있는 게르를 .. 2023. 9. 9.
4-2. 조용한 시골 마을 자르갈란트 하늘이 가까워서 구름의 그림자까지 또렷하게 보이는 초원을 한참 달리다가 자그마한 시냇물이 흐르는 언덕에 멈춰 섰다. 예쁘다며 감탄을 내뱉는 우리를 보고 기사님이 차를 돌려세워주신 것.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기사님은 장거리 운전에 피곤하신 초원에 드러누워 쉬셨다. 길을 건너는 말 떼를 뚫고 지나가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초원을 휴게소로 쓰는 것도 그렇고 몽골 사람들은 자연과 진정으로 어울려 살 줄 아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자연과 사람을 진심으로 동등한 위치에 두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다고 할까? 예쁜 초원을 보면서 감탄하며 사진도 찍고 맑은 개울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며 우리도 뻐근해진 몸을 풀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기사님의 허락을 받아 푸르공에 올라가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 선 .. 2023. 9. 3.
2-3. 우리의 밤과 바다(홉스골 여행자 캠프 후기) 꿈에 그리던 홉스골을 드디어 눈앞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더 짧은 일정과 사막의 예쁜 사진으로 남쪽으로 떠나는 고비 코스가 인기가 훨씬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망설임 없이 홉스골을 선택했었다. 생각보다 빨리 주인공을 만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설레는 마음을 감출 길은 없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오자 마법처럼 날이 맑아졌다. 점점 울창해지는 숲을 바라보며 호수에 다다를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무렵 나무 사이로 수평선이 고개를 내밀었다. 쿵쿵쿵쿵 심장이 뛴다. 홉스골 호수는 우리가 만났던 언덕 위의 장터에서 그 모양을 한 표지판을 지나 길을 조금만 따라 가면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오래된 푸르공은 저 앞에 멈췄다가 다시 언덕길을 내려가기 위해 차를 밀어 시동을 걸어야 했는데, 몽골.. 2023. 8. 27.
1-5. 게르에서의 첫날밤(SONY RX100 M6로 별 사진 찍기) 오랑 터거에서 돌아와 캠프에서 저녁을 먹을 때쯤에는 날이 몹시 밝아졌다. 몽골은 하늘이 낮아서인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인지 구름의 움직임이 아주 잘 보인다. 어느덧 흩어진 구름과 해가 지기 시작한 하늘을 보며 오늘 밤에 별이 뜰 일을 몹시 기대하게 되었다. 몽골의 여름은 낮이 무척 길어서 저녁 8시나 되어야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10시쯤에야 날이 어두워진다. 저녁식사는 캠프 내 식당에서 주셨는데, 무 샐러드와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채소를 못 먹을까 봐 걱정했는데 샐러드라니 반가워서 신나게 먹었고, 카레라이스야 당연히 익숙한 음식이라 또 맛있게 먹었다. 가장 좋았던 것 캠프 식당의 뷰. 2층 창가에서 식사를 했는데 게르처럼 생긴 목조 건물을 빙 두르고 창문이 나 있다. 넓은 초원이 보이는 모습이 마음..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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