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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를지9

11-3. 몽골 올레길 3코스 트레킹 (3) 날이 더워지니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진창에 발이 슬슬 빠지기 시작하고. 발을 빠지는 걸 피하려 어쩔 수 없이 언덕 아래의 둘레길이 아닌 언덕 위쪽으로 피해 가려다 보니 코스가 더 길어지고 힘들어졌다. 다니다 보니 발이 너무 깊이 빠져서 도저히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이 나왔는데,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가이드님이 위험해서 안 된다며 기어이 나를 업고 길을 건너 주셨다. 몽골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쪘을 것 같은데...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가이드님. 걷다 보니 길이 탁 트인 언덕이 나타났는데, 얼마나 꽃이 많이 피어 있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없어 이렇게 예쁜 초원을 전세낸 것처럼 걸을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찼다. 파란 하늘 아래에 이렇게 초록초록하고 꽃이 잔뜩 피어있는 초원이라니 정.. 2023. 12. 30.
11-2. 몽골 올레길 3코스 트레킹 (2) 탁 트인 초원을 지나고 나니 이번엔 숲이 나타났다. 몽골에서 이렇게 울창하고 빽빽하게 나무가 자란 곳을 보는 일이 흔치 않아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트레킹 하는 맛도 나고. 확실히 주변에 물이 많으니 나무나 풀이 잘 자라는데, 이렇게 가는 곳마다 물의 양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게 참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주변 물의 양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일이 없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인데 몽골을 여행하고 보니 이렇게 어딜가나 식물이 자라기에 충분한 물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인 것 같다. 덕분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씻는 것도 큰 불편함 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지방 어딜 가나 물놀이도 할 수 있고. 그나저나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점점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산이 스펀지처럼 물.. 2023. 12. 30.
11-1. 몽골 올레길 3코스 트레킹 (1) 원래는 울란바토르 근교 복드항산의 체체궁을 오르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가면 트레킹을 꼭 해보고 싶어 진다.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건 지나가면서 인증샷을 찍고 끝나는 여행과는 그 진득함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주변에 트레킹을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여행하는 기회만 오면 트레킹 코스를 찾아본다. 그래서 제일 처음 예약한 게 체체궁 트레킹 투어였다. 그런데 어제 울란바토르 여행을 하면서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틀 전 내린 비 때문에 체체궁 진입이 어려워 투어를 취소해야 한다는 것. 다른 코스나 대안이 있을 지 틈틈이 알아봤지만 가능한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도저히 궁금한 게 없는 나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다년간 수십번의 여행으로 다져진 건.. 2023. 12. 29.
10-2. 몽골이 체질 여행사에서 일찍 오기 힘들다고 한 덕분에 꽉 채운 1박 2일을 보내고 나왔다. 비 오는 어젯밤 내내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역시 변덕스러운 몽골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곳이다. 오늘은 어제 비 맞으며 말을 타느라 보지 못했던 천진벌덕(Tsonjin Boldog) 기마상에 오늘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님이 오셔서 날 데려다 주기로 했다. 보자마자 나한테 차비를 달라는 둥 가이드비를 달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마주친 회사의 다른 분 덕분에 잘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보자마자 돈 얘기를 꺼내는 게 기분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런 분과 1:1로 있어야 하다니. 어쨌든 날씨도 좋고 기왕 온 김에 천진벌덕 기마상도 보고 가면 나쁠 거 .. 2023. 11. 12.
10-1. 구름 맛집 몽골 새벽녘에 별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눈을 몇 번 떠봤지만 게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다시 잠들길 몇 차례. 잦아든 빗소리에 희망차게 눈을 떴을 땐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신나서 밖을 봤지만, 지금은 여름. 머지않아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다. 게르에서 자는 마지막 기회라 하늘 가득한 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샛별 하나만 한쪽에서 반짝일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그래도 한 쪽 하늘이 열리는 것 같길래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봤는데(캠프에선 다른 할 일도 없다), 야속하게도 몽골의 하늘은 나에 그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손님이 나 하나뿐이었고, 울란바토르에서 특.. 2023. 10. 29.
9-4. 밤에 게르에서 혼자 하루가 유난히 길었다. 당장 하고 싶은 건 역시 뜨거운 물로 씻고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 한국에서는 사소한 일상이지만 몽골에선 그렇지 않다(플래그🚩). 온수가 있으면 감사해야 하는 곳, 공용 샤워장에 옷을 가지고 가서 씻다 보면 옷이 눅눅해지는 곳이 바로 몽골이다. 게다가 밖에는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나가기가 번거로워서 비가 잦아들고 난 뒤에 씻으러 가고 싶었지만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기엔 너무 추워서 더 기다릴 수 없어 길을 나섰다. 알고 보니 날씨 때문인지 휴가 성수기가 지나고 있기 때문인지 캠프 전체에 손님이 거의 없는 둣했다. 여행사에서도 알아서 놀라고 나를 두고 갔고, 내일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비가 오니 어차피 캠프파이어는 없었겠지만 한 명만 예약하면 손해를 본다.. 2023. 10. 22.
9-3. 드디어 테를지 국립공원 투어 쫄딱 젖은 상태였지만 투어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아 젖은 채로 다음 일정을 향해 가야 했다. 홉스골에 같이 갔던 가이드님이었다면 추울까 봐 걱정해 주면서 옷 갈아입을 시간을 마련해주려고 하셨을 것 같은데, 이번 투어사는 세심한 배려가 몹시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일정에 지장을 주기도 뭣해서 따로 말씀드리진 않고 나머지 일정을 소화한 뒤에 숙소에서 잘 쉬기로 했다. 다행히 빗줄기가 말을 탈 때보다 약해져서 더 젖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저녁시간 전까지의 일정은 거북바위와 기념품샵, 아리야발(Aryapala) 사원이었다. 사실 테를지는 울란바토르에서 가까운 곳이고 관광지라는 인식이 강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를 많이 찾아보지 않고 갔었다. 그 와중에 투어 진행을 하면서 설명이.. 2023. 10. 20.
9-2. 날씨 요괴의 말타기 점심을 먹고 나서 원래 일정은 천진벌덕(Tsonjin Boldog) 기마동상 투어였다. 우리가 위치한 테를지 공원 다른 쪽에 위치한 동상이라 왕복 50km 정도, 그러니까 왔다 갔다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데, 투어 가이드님이 젊은 사람들은 그냥 말을 2~3시간 실컷 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여기에서 젊은 사람들이란 나와 함께 작은 승용차를 타고 온 일행. 다행히 그분들도 승마에 호의적이라서 혼자 말을 타는 재앙은 없었다. 홉스골에서 1시간 산책하듯 타는 게 아쉬웠던 나는, 꽤 멀리 있는 개울가까지 달려가볼 수 있다는 말에 냉큼 말을 타겠다고 했다. 승마 체험은 시간 당 35,000 투그릭이었는데 투어사에서 따로 흥정을 해주거나 신경 써주시지는 않고 알아서 마부 분들께 내라고, 승마 체험 신.. 2023. 10. 14.
9-1. 새로운 여정의 시작(테를지 국립공원) 아침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하는 친구들은 새벽에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큰 숙소에서 나 혼자 맞는 아침이 낯설게 느껴졌다.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내내 깔깔대며 같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던 친구들이 나가고 나자 이 적막이 낯설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숙소가 너무 좋아버리는 바람에 평화롭고 여유로운 아침이기도 했다. 몽골의 아침이니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시며 한국으로 부칠 엽서를 쓰고, 어제저녁에 편의점에 가서 궁금해서 사보았던 요구르트로 아침을 해결했다. 비트와 오이맛이라고 하는 게 신기해서 사봤는데, 생각보다 익숙한 요구르트 맛이었다. 색깔만 비트 색인 게 달랐을 뿐. 과일맛과는 달리 단 맛이 없었지만 오히려 아침으로 먹기엔 건강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매일 비슷한 조식.. 202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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