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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9-1. 새로운 여정의 시작(테를지 국립공원)

by 이냐니뇨 2023. 10. 2.

아침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하는 친구들은 새벽에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큰 숙소에서 나 혼자 맞는 아침이 낯설게 느껴졌다.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내내 깔깔대며 같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같이 있던 친구들이 나가고 나자 이 적막이 낯설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숙소가 너무 좋아버리는 바람에 평화롭고 여유로운 아침이기도 했다. 몽골의 아침이니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시며 한국으로 부칠 엽서를 쓰고, 어제저녁에 편의점에 가서 궁금해서 사보았던 요구르트로 아침을 해결했다.

 

비트와 오이맛이라고 하는 게 신기해서 사봤는데, 생각보다 익숙한 요구르트 맛이었다. 색깔만 비트 색인 게 달랐을 뿐. 과일맛과는 달리 단 맛이 없었지만 오히려 아침으로 먹기엔 건강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매일 비슷한 조식을 먹다가 소박하지만 내가 먹고싶은 대로 사 먹는 식사를 하게 되니 소소한 행복감이 들었다. 만족스러운 하루의 시작이다.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동네 산책을 하며 근처 ATM(GS25마다 Khaan Bank ATM이 있었다.)을 찾아가 오늘 투어에서 쓸 돈을 인출했다. 트래블 월렛으로 인출하니 인출 수수료가 없어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찾아서 썼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몽골이라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기 불안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몽골에선 물가가 비싼 편이라 그런 지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느껴졌다. 길에서 드러내고 돈을 꺼내는 일이 없는 것도 좋았고.

 

소매치기를 빼면 울란바토르에서 위험한 건 없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인적이 드물고 낯선 길을 걷고 있자니 여행 첫날같은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친구들이 떠났을 뿐인데 여행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

 

 

 

 

떠나오기 전 1박 2일의 테를지 투어를 예약해두었었다. 혼자 가는 사람이 잘 없기도 하고 1박 2일 투어를 하는 사람이 영 없는지 예약이 꽤 힘들었다. 모객이 되지 않는 바람에 처음에 가려던 건 취소하고 러브몽골 카페에서 1인이어도 일정을 확정해 준다는 테를지 1박 2일 상품을 발견해 예약을 하게 됐다. 원래 하려던 것보다 조금 비싸긴 했어도 확실한 일정을 보장해 준다고 하니 다행스러웠다.

 

 

내가 참여한 1박 2일 테를지 투어 일정

 

 

투어는 9시 10분에 숙소 앞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했다. 큰 차량으로 픽업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는데, 당일 투어와 1박 2일 투어의 일정이 같다며 사람들을 픽업하더니 나중엔 작은 승용차 뒷자리에 3명이 구겨 앉게 되었다. 그간의 투어를 생각하고 차에서 잠시나마 잠을 청해 볼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앉아있기조차 힘들었다. 다행이었던 건 같이 앉은 사람들이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라 친해질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투어 차량 한 대는 예약 인원이 많아져 급하게 섭외한 것 같았고, 운전하시는 분도 가이드가 아닌 데다 한국어도 전혀 못하셨다. 일정을 어레인지 한 한국인 직원 분이 차에 같이 타셨는데, 투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나 지역 소개도 없고 그냥 회사 자랑만 늘어놓기 시작해서 조금 불쾌해졌다.

 

게다가 1박 2일 일정인 나는 그냥 사람들 일정을 같이 하다가 숙소에서 쉬고 다음날 여행사 차량을 타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투어 소개에는 이튿날 일정에 승마 체험이나 산책 등이 적혀 있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었다. 나로서는 테를지에서 꼭 1박을 하고 싶었고, 그게 가능한 투어가 이것밖에 없었으니 다른 선택은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 제 값을 하는 투어라고 보기는 어려운 퀄리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테를지로 가는 길은 또 새로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울란바토르에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라 가는 길에 공장도 보이고 큰 주유소도 보이는, 꽤나 근대화된 도로가 보였다. 이미 북쪽 시골의 풍경을 잔뜩 보고 온 터라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보고 있으니 너무너무 예뻤다.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거리가 젖어있고 구름이 많았는데, 날이 점점 개고 있어서 오늘의 일정을 기대하게 됐다.

 

공원 입구에 다다르니 강과 푸른 산이 우릴 반겨주었다. 이 정도 폭의 물길은 몽골에 와서 처음 보았고 그래서인지 주변에 나무나 풀이 많아서 초록초록했는데, 그것도 그간 보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예상치 못한 투어 전개에 언짢아졌던 기분도 많이 나아졌다. 최대의 국립공원답게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웬 목장 같은 곳에 도착했다. 한켠에 말들이 묶여 있고 울타리 안에는 몇 채의 게르와 염소 몇 마리가 보였다. 가축이 많은 만큼 바닥에 똥도 많았지만 풍경만큼은 그림 같고 멋있었다. 말을 치면서 살아가는 실제 유목민의 게르라고 했다. 그중 게르 한 동은 모자도 써보고 전통의상도 입어보며 유목민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우리나라 민속촌 같은 곳이었다. 테를지 공원 안에서만도 이렇게 볼 게 다 있으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테를지만 와서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르는 크게 볼 게 없었고 그냥 옷 입고 사진 찍는 정도. 가이드님들도 사진을 찍어주는 것 말고는 따로 설명해 주거나 하는 게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곧 한 편에 마련되어 있는 천막 아래에 앉았다. 아까 그 게르에 사는 몽골 사람들(가족인 것 같았다.)이 말을 타고 공연을 보여주셨다. 말 위에서 활을 쏘기도 하고 말을 타고 달려와 바닥에 있는 막대를 집어 올리기도 했다. 나담 축제에서 하는 것처럼 경주를 보여주기도 하셨는데, 푸르공을 타고 가던 중에 길가에서 언뜻 본 적은 있어도 실제 경주를 제대로 하는 것은 처음 봤는데, 안 보일만큼 멀리서 달려오는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신기했다. 말을 잘 타는 사람 중 한 명은 어린 여자아이였다. 몽골 시골에서는 어릴 때부터 말타는 걸 가르친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다. 축제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이 몸무게가 적게 나가서 기수로 많이 나가기도 한다고 했다.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타는 아이가 대단해 보여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우리도 말 한 마리씩 타볼 기회도 주시고 사진도 찍게 해 주셨다. 역시나 키가 작은 나는 가장 작아 망아지처럼 보이는 말을 골라서 타라고 하셨다. 보드를 타도, 말을 타도, 아동용을 받는 키작녀의 인생.

 

 

 

 

말도 보고 활도 쏴보고 리조트 안에 있는 씨름 박물관도 둘러본 뒤에 점심을 먹을 시간. 이젠 익숙해진 몽골의 튀김만두 호쇼르, 찐만두 보즈, 볶음면 쵸이왕이 오늘의 점심 메뉴였다. 안에 손 씻을 곳도 잘 되어 있고 식당 인테리어도 꽤나 현대적인 여행자 캠프였다. 그만큼 음식 맛도 어려움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라 나는 익숙하게, 그리고 몹시 만족스러워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

 

주변엔 대부분 몽골에 짧게 있으면서 테를지만 보고 가는 분들이라 신기해하며 드시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혼자 왔냐면서 말도 걸어주시고 사진도 찍어 주시면서 잘 챙겨주신 좋은 분들이었다. 다행히 외롭지 않고 정겹게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씨름 챔피언 기념관.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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