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9-2. 날씨 요괴의 말타기

by 이냐니뇨 2023. 10. 14.

점심을 먹고 나서 원래 일정은 천진벌덕(Tsonjin Boldog) 기마동상 투어였다. 우리가 위치한 테를지 공원 다른 쪽에 위치한 동상이라 왕복 50km 정도, 그러니까 왔다 갔다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데, 투어 가이드님이 젊은 사람들은 그냥 말을 2~3시간 실컷 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여기에서 젊은 사람들이란 나와 함께 작은 승용차를 타고 온 일행. 다행히 그분들도 승마에 호의적이라서 혼자 말을 타는 재앙은 없었다.

 

홉스골에서 1시간 산책하듯 타는 게 아쉬웠던 나는, 꽤 멀리 있는 개울가까지 달려가볼 수 있다는 말에 냉큼 말을 타겠다고 했다. 승마 체험은 시간 당 35,000 투그릭이었는데 투어사에서 따로 흥정을 해주거나 신경 써주시지는 않고 알아서 마부 분들께 내라고, 승마 체험 신청만 해주셨다. 3시간 타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고 현금도 부족해서 2시간만 타기로 했다. 몽골 답게 아주 간단한 설명만 듣고 말 위로 올라탔다. 몽골에 오기 전 캐나다에서 말을 한 번 타봤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몹시 삐딱하게 말을 타는, 아까 경주를 보여준 기수 중 한 명이 2명의 말을 끌었고, 노련하게 묘기를 보여 주셨던 다른 분이 나머지 한 분의 말을 끌어 주셨다(두 분은 부자관계인 듯했다). 설렁설렁 말을 끌고 가는가 싶어 주변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초원을 둘러싼 커다란 산맥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신나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곧 "쵸! 쵸!"하는 소리와 함께 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행여나 떨어뜨릴까 카메라를 꼭 부여잡고 가방 입구를 꼭 막은 채 말 위에 매달려 있었다. 매달려 있다는 표현이 맞았다. 어떻게 말과 호흡하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자꾸만 발도 고리에서 빠져나왔다.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손에 쥐가 나도록 고삐를 부여잡고 있을 뿐이었다.

 

팔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스릴도 있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좋았다. 이렇게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시간이라니. 홉스골에서 느릿느릿 짧은 거리를 가느라 아쉬운 마음이 다 풀렸다. 오히려 꿈만 같았다. 장난치듯 말을 조금 달려 주다가 곧 속도를 늦춰주어 다시 풍경을 볼 여유가 생겼다.

 

 

 

 

말이 속도를 늦춘 동안 주워 들은 승마 지식을 되짚어본다. 허벅지와 배에 힘을 주고 말을 감싼 뒤 말의 속도가 빨라지면 살짝 일어나 스쿼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보통 몸을 뒤로 살짝 젖히듯 앉으라고 하셨는데 말이 빠르게 달릴 때는 앞으로 나가는 듯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런 자세는 숙련자만 해야 하고 자칫 말이 내리는 신호로 오해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나니 드넓은 초원에서 이렇게 말을 타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몽골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나라인데 아주 여러 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건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언덕을 오르는데 잠시 평지에서 말을 끌던 한 분이 우리를 두고 말을 힘차게 달렸다.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기까지. 나는 말을 같이 몰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괜찮은데 같이 가던 한 분은 고삐를 흔들어도 꼼짝 않는 말 때문에 뒤에 버려졌다. 우리만 야생화가 가득 핀 초원을 천천히 산책할 뿐이었다. 그리고 곧 저 멀리에서 사라졌던 분이 말들을 몰고 왔다. 아마 말들도 귀가시간이 되어 데리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 빗방울도 같이 오기 시작했다. 후두둑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어느덧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세차게 오는 데다 주변에 지붕 비슷한 것도 당연히 없었다. 그냥 시원하게 비를 맞았다. 이렇게 비를 맞아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당황스럽고 웃긴 이 시간에 오히려 모두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같이 가던 마부 분들도 이런 경험은 생소한지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사진과 영상을 열심히 남기셨다.

 

 

 

 

궂은 날씨에 멀리 가기도 어렵고 앞을 보기도 힘들 정도라 원래 목표한 언덕 너머까지 가진 못하고 천천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아까 데려오신 말들과 함께 실컷 달려보는 재미가 있었다. 언제 내가 몽골에서 말을 몰아보겠나. 추운지 말들도 서로 바짝, 살을 맞대고 붙어 갔다. 덕분에 다리가 끼는 일이 많았지만 나도 따듯해지고 말과 닿은 부분의 옷이 말라가서 좋았다. 어느덧 달리는 말에 적응해서 훨씬 여유 있게 올라앉아있을 수 있었다.

 

 

돌아와서 시계를 보니 1시간 반 정도 겨우 지났을 뿐이라 아쉬움이 컸다. 2시간이 채 되지 않은 데 대한 어떤 사과나 환불도 없어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아주 비싼 가격은 아니고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어느덧 내 옷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가능하면 말을 탈 때에도 좀 더러워져도 되는 옷을 입고 타길 권한다. 나는 결국 이날 입은 바지를 버리고 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