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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8-3. 도시 기행 2편(더불 샤부샤부)

by 이냐니뇨 2023. 9. 30.

쇼핑을 마치고 저녁 예약 시간까지 좀 남아서 덤으로 시내관광을 할 수 있었다. 투어 일정의 마지막 날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 몹시 기분이 좋았다. 달달거리는 푸르공을 타고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갔다. 국영백화점에서 수흐바타르 광장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을만한 거리인데, 걸어서도 차를 타고도 2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참고로 차를 타고 가는 게 더 오래 걸릴 때도 많다고 한다).

 

시내 한복판에 큰 광장이 있고 그 앞에는 몽골 정부청사가 있는 데다 광장에 칭기즈 칸 동상이나 수흐바타르 장군 동상이 있는 게 광화문 광장이랑 몹시 비슷했다(알고 보니 비슷한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비슷한 점은 다른 기회에...). 심지어는 한쪽에 푸드트럭 존이 있었는데 떡볶이도 팔고 있었다. 나 벌써 한국에 온 건가?

 

 

 

 

광장 산책을 마치고 난 뒤 오늘의 하이라이트, 더 불(The Bull)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모든 투어의 마무리가 울란바토르에서 샤브샤브 회식이길래,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면 으레 그렇듯 단체 손님을 잘 받는 식당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몽골에서 난생처음 보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몹시 세련된 식당이었다. 입구부터 감동. 건물도 깨끗한 데다가 문도 제대로 달려 있다. 울란바토르는 다른 세상이었다.

 

 

 

 

게다가 내 눈에 띈 것은 생맥주 기계였다. 생맥주라니. 그동안 캔맥주조차 차갑게 먹기 힘들던 이 몽골에서 생맥주를 만났다. 징기스 맥주라고 해서 마트에선 본 적이 없는 맥주였는데(징기스 칸에 정말 진심인 나라), 찾아보니 생맥주로만 파는 듯했다. 처음 보는 건 먹어 줘야지(맥주는 별도로 계산해야 함).

 

 

 

 

우리는 룸을 예약해주셔서 회전 테이블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되다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맥주도 맛있었고 젓가락질도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메뉴가 몹시 다양해서 뭘 시켜야 하나 고민스럽긴 했는데, 무엇보다 채소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당연히 야채를 추가해 먹었다. 재료는 가운데 두도록 잔뜩 시키고, 각자 자리에서 육수를 끓여 익혀 먹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버섯 육수를 골랐는데 깔끔하고 맛이 좋았다.

 

 

 

 

가이드님 추천으로 말고기도 시켜보았다. 예전에 말고기는 질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좀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담백해서 양고기보다 훨씬 맛있게 먹었다. 말고기가 몸에 열을 낸다고 해서 몽골 사람들은 겨울에 주로 먹는다는데, 그것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이날 저녁에 계속 더운 것 같았다.

 

 

그거 말고도 만두 사리, 칼국수 사리, 오이 무침, 볶음밥에 꽃빵 튀김까지. 역시 푸짐하게 시켜서 맛을 봤다. 오이무침이 상큼하게 입을 정리해 줘서 정말 맛있었다. 신기하게 몽골은 오이랑 당근이랑 무도 샤부샤부에 넣어 먹는지 모둠 채소에 함께 나왔다. 신기해서 익혀 먹어봤는데, 오이는 별로였고 당근은 역시 맛있었다. 몽골에서 당근의 신세계를 만났다.

 

시금치도 샤브샤브 재료로 있길래 신기해서 먹어봤는데 달짝지근하고 흐물흐물해서 어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거 말고 나머지 재료는 정말 맛있었다. 몽골 특유의 쿰쿰함이 전혀 없었다. 도시의 맛은 다르구나. 큰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였다. 이번에도 역시 배가 찢어지도록 불렀다.

 

가이드님은 우리처럼 음식 안 가리고 잘 먹는 사람들이 많냐는 질문에, "많아요, 남자분들."이라고 하시며 우리를 기절하게 만드셨다. 여행 내내 소소한 농담으로 우릴 웃겨주시던 귀여운 가이드님이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다.

 

 

 

이 일정을 끝으로 홉스골 투어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가이드님과 기사님은 우리를 숙소까지 바래다주시고 짐을 옮겨주시고 떠나셨다. 여행 일정 내내 의지를 많이 했고 귀여운 두 분과의 일정이 즐거웠는데 막상 헤어지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두 분에게도 우리와의 일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도시로 와서 함께 하는 마지막 밤인만큼 심혈을 기울여 골랐던 숙소. 아파트 외관이 꽤 낡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게다가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빌렸었는데, 몽골 일정 처음으로 각방을 쓰는 날이라 감동 또 감동. 호스트 분이 영어도 하시고 집도 깨끗하고 널찍하고 화장실도 2개. 이렇게 쾌적할 수 있나 싶었다. 울란바토르는 숙박비가 비싼 편인데, 인당 10만 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구한 숙소였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퀄리티였다. 자연과 함께하는 몽골 일정이 몹시도 좋았고 다시 가고 싶을 만큼 행복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도시의 편안함이 그립고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숙소는 그 마음의 절정이었다.

 

 

 

 

 

원래는 마지막 밤에 근사한 바라도 가서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숙소를 본 순간 여길 최대한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너무 부르기도 했고. 대신 근처 슈퍼에 가서 맥주를 사와서 남은 공금과 차를 나누는 할리갈리 내기를 했다. 사 본 맥주도 너무 맛있었고 아주 편안해서 즐거운 저녁이 저물어 갔다. 앞선 여행이 너무 좋았어서 끝나가는 하루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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