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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10-2. 몽골이 체질

by 이냐니뇨 2023. 11. 12.

여행사에서 일찍 오기 힘들다고 한 덕분에 꽉 채운 1박 2일을 보내고 나왔다. 비 오는 어젯밤 내내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역시 변덕스러운 몽골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게 개어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곳이다.

 

오늘은 어제 비 맞으며 말을 타느라 보지 못했던 천진벌덕(Tsonjin Boldog) 기마상에 오늘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님이 오셔서 날 데려다 주기로 했다. 보자마자 나한테 차비를 달라는 둥 가이드비를 달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좀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마주친 회사의 다른 분 덕분에 잘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보자마자 돈 얘기를 꺼내는 게 기분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런 분과 1:1로 있어야 하다니.

 

 

 

 

어쨌든 날씨도 좋고 기왕 온 김에 천진벌덕 기마상도 보고 가면 나쁠 거 없다 싶어서 따라 나서기로 했다. 천진벌덕 기마상은 최근에 '나 혼자 산다'에서도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방송에서 휴게소 같은 곳에 들러서 호쇼르를 먹던 게르도 테를지로 가는 길에 있었던 식당가도 테를지로 가는 길에 있다. 좋아하는 프로에 나온 곳이라 궁금한 마음이 있어서 가보기로 한 것이다.

 

 

 

멀리에서부터 웅장한 모습의 징기스칸 기마상이 눈길을 끌었다. 몽골은 어딜 가나 말과 칭기즈칸에 진심인데 그 둘의 조합으로 커다란 전망대를 만들어 버리다니. 정말 진지하구나. 칭기즈칸은 13세기에 그 유명한 몽골제국을 세워서 세계를 정복했고 여전히 몽골 사람들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아무래도 몽골의 리즈 시절이라 더욱 그런가 보다. 이 기마상은 몽골 통일 8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을 시작해 2010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몽골에서 이 정도면 신상 축에 드는 것 같다.

 

 

 

 

이곳은 입구부터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주말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잔뜩 모여 있었지만 사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인위적인 조형물보단 역시 몽골의 아름다운 초원이 훨씬 멋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압도해 버리는 대형 동상이라니. 단순한 발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천진벌덕 기마상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들어갈 수 있고 입장료 2,000투그릭을 내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다(전망대 입장료 포함). 몽골 치고는 다소 비싼 입장료인데, 그래도 내부 시설이 현대적이고 깔끔했다. 울란바토르 근처에 왔다는 게 절절하게 느껴진 모습.

 

안에 들어갔더니 1층엔 간단한 징기스칸 박물관이 있었다. 당시 지도나 갑옷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몽골 제국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보니 익숙한 부분도 꽤 있었지만 사실상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한 이후 역사는 잘 모른다. 가이드님이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면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까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저 꼭대기는 전망대라 공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 그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그 와중에도 말의 머리가 전망대인 것은 감히 칭기즈칸의 머리에 올라갈 순 없다는 발상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전망대 위에 있는 건 몽골 제국 통일에 기여를 한 9명의 장군들.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아침을 늦게 먹기도 했고 많이 먹기도 해서 점심은 좀 간단하게 먹겠다고 했다. 처음엔 다른 곳으로 설득해보려던 가이드님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말에 방송에 나온 먹거리 게르촌으로 날 데리고 가 주셨다. 방송 후에 유명해졌다고 하더니, 출연진들이 간 게르에는 나 혼자 산다 사진도 붙어 있었다. 몽골에서 느껴보는 한국의 기운.

 

먹거리촌은 어느새 규모가 엄청 커져 있어서 음식을 파는 게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가이드님이 이끌고 간 게르에 가서 음식을 시키기로 했다. 아주 오랜만에 눈에 띈 닭 요리가 있길래 나는 닭볶음탕과 비슷한 덮밥을 시켰다. 오랜만에 매콤한 걸 먹으니 또 너무 맛있었다. 곁들여 나온 당근 샐러드와 도시 샐러드도 맛이 좋았다. 식당 게르는 또 처음이라 사장님이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식당에서 마유주를 파는 것을 발견! 내가 궁금해하는 걸 느꼈는 지 가이드님이 마유주 한 번 먹어보겠냐고 물어보셨다. 안 그래도 투어를 하면서 마유주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게 아쉽던 참이라 반갑게 그러겠다고 했다. 마유주는 말가죽으로 된 발효통에 젖을 넣고 발효시켜 먹는 몽골의 전통 술이다. 가이드님이 식당 사장님께 부탁해 담아둔 거 말고 바로 발효통에서 섞어서 떠 달라고 해서 상태 좋은 마유주를 먹어볼 수 있었다.

 

마유주는 우리나라 막걸리랑 아주 비슷한 맛이었다. 막걸리에서 단 맛이 빠지고 우유 맛이 좀 나는 느낌이랄까? 약간 느끼한 막걸리 같은 맛이었는데 역해서 못 먹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먹고 배탈이 났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어느 것도 해당되진 않았다. 좋은 경험이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역시 몽골이 체질이라 마유주도 잘 먹는다며 우스워했다. 오늘도 새로운 걸 해볼 수 있어 즐거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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