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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10-1. 구름 맛집 몽골

by 이냐니뇨 2023. 10. 29.

새벽녘에 별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눈을 몇 번 떠봤지만 게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다시 잠들길 몇 차례. 잦아든 빗소리에 희망차게 눈을 떴을 땐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신나서 밖을 봤지만, 지금은 여름. 머지않아 해가 떠오를 시간이었다. 게르에서 자는 마지막 기회라 하늘 가득한 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샛별 하나만 한쪽에서 반짝일 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그래도 한 쪽 하늘이 열리는 것 같길래 일출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고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봤는데(캠프에선 다른 할 일도 없다), 야속하게도 몽골의 하늘은 나에 그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손님이 나 하나뿐이었고, 울란바토르에서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여행사에서는 천천히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보단 테를지에 더 오래 있는 게 나로서도 더 좋아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주변 트레킹 코스나 할 수 있는 다른 걸 알려주신 게 아니고 알아서 주변 산책을 하라고만 하셔서 캠프 산책이나 슬쩍해볼 뿐이었다. 간밤의 비 때문에 풀도 다 젖어 있고 길도 많이 망가져 있어서 더더욱 뭘 해야 할지 어렵기만 했다.

 

 

이 캠프에도 출근한 소떼들.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니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졌다. 캠프에서 아침 식사는 9시부터 가능하다고 하셔서 아침을 먹기 전에 캠프 밖으로 나서 산책을 해보기로 한다. 들어오는 길목에서 냇가를 봤는데, 물가를 걸으면 또 새로운 기분이 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어제 차를 타고 지났던 익숙한 길이 보였다. 파란 하늘과 산 허리에 걸린 구름 같은 것들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제 내린 비의 흔적이 확연했다. 비포장도로이다 보니 물에 길이 잔뜩 패이고 진창이 되어 있다. 조심조심 마른 쪽으로 발을 디디며 냇가로 가보았다. 물은 맑고 차갑고 상쾌했지만 비가 많이 온 탓에 흙탕물처럼 보여서 색이 누랬다. 어제는 맑고 파란 냇가를 봤었는데. 

 

 

이럴 때 보면 정말 인간은 자연 앞에 아무런 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오니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젯 밤부터 누군가 할퀴고 지나간 것 같은 냇가의 모습까지. 몽골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연에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런 큰 힘이 더 뼈저리게 와닿는다. 한국에서도 갑자기 많이 내린 비에 피해가 막심하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한낱 인간은 그저 내가 아는 모두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모두 큰 피해 없이 무탈하길 기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시간 맞춰 캠프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익숙한 몽골의 아침 메뉴. 조금씩 달라지는 건 국물 요리들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옥수수 스프? 죽? 같은 것이 나왔다. 아침에는 역시 따뜻한 게 들어가야지. 몽골에 와서 따뜻한 차와 아침 식사에 익숙해진 거다. 자극적이지 않고 구수한 수프에선 강냉이 같은 맛이 났다. 이 수프가 몸을 데워주고 속을 든든하게 채워줬다. 늘 그랬듯 양도 많았다. 어젯저녁에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준 캠프의 배려가 생각나서 기분 좋게 싹싹 먹어치웠다.

 

 

 

 

아침을 다 먹고 여유롭게 짐 정리를 한 뒤에도 아직 여행사에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천천히 오겠다고 했지, 몇 시에 오겠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딜 가기도 좀 애매했다. 나는 어제 비 때문에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게르의 테라스에서 햇빛을 받으며 지나가는 구름을 지켜보았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구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산 꼭대기가 아니라 산 허리에 걸려 있던 구름은 초원 바로 위에도 한 두덩이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산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구름들이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보고 있는 것도 재미있어서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에선 이렇게 오랫동안 하늘을 보고 있을 시간이 있었나? 구름 하나하나를 자세히 쳐다보는 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에나 해보았던 것 같다. 어느새 나는 그때로 돌아가 강아지 모양 구름도 찾고 하트 모양 구름도 찾고 있었다. 내 마음도 구름처럼 몰캉몰캉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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