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는 교통 체증으로 악명이 높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은 책 내용에 따르면 인구는 터질 듯이 많은데 그 인구를 수용할 만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택시도 정규 택시가 있거나 우버가 발달한 게 아니고 개인 승용차를 택시처럼도 사용한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행자에게는 최악이라고 밖엔.
사실상 조금 먼 곳으로 이동하려면 선택권이 택시 밖에 없는데 혼자 여행하는 입장에선 그게 꽤나 불안한 요소라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마침 돈을 밝히는(점심을 먹으면서도 열받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자세히 쓰지 않겠다.) 기사님을 만난 건 운명처럼 여겨졌다.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밖의 프라이빗 투어를 문의하게 되었다.
울란바토르에서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 시내에서 떨어진 곳이 자이승 전승 기념탑(Zaisan Memorial) 하나였는데, 숙소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가 걸리고(버스로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주요 관광지와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곳이라 갈 길이 애매하던 참이었다. 가이드님께 문의했더니 일단 5만 투그릭을 받고 자이승 기념탑 투어를 해주신다고 하길래 조금 비싼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편하게 갈 수 있으니까.
낮시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차가 많이 막히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기념탑은 울란바토르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있는데, 처음부터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요즘은 '자이승 힐 쇼핑센터'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다.
현대적인 쇼핑센터에 들어가면 아예 층별 안내에 자이승 전승 기념탑으로 이어지는 유리 다리(Glass Bridge) 안내가 되어 있다. 쇼핑센터에서 곧장 7층으로 가면 된다는 뜻. 유리 다리를 건너 가면 자이승 전승 기념탑으로 향하는 입구 초소처럼 생긴 간이 카페가 있고 돌계단이 쭉 이어져 있다. 이 계단을 5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다.
자이승 전승 기념관은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탑인데, 이때 몽골과 러시아의 연합을 기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푸른 눈에 금발을 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등장한다. 몽골과 러시아는 이때부터 친하게 지냈다고 하고, 지금까지도 몽골은 많은 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침 식사는 주로 빵을 먹고 젓가락이 아니라 포크를 쓰는 등 유럽식 문화를 일부 답습하여 살고 있다. 아침 말고 다른 음식들은 밥이나 면처럼 익숙한 아시아 음식 종류인데 포크를 쓰자니 답답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다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구나.
사실 내가 여기에 가보고 싶었던 건 이런 역사적인 배경 보단 울란바토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제 비가 왔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한 하늘이 날 반겨주었다.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사막이 울란바토르보다 남쪽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만 영향을 끼치고 오히려 울란바토르는 공기가 아주 좋더라. 왠지 억울한 마음도 좀 들었다.
어쨌든 프라이빗 투어 덕분에 편안하고 쾌적하게 자이승 기념탑을 보고 숙소로 향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늘 하루도 아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숙소에 들어가 마유주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낮잠을 한숨 자고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시내에서의 첫 번째 저녁은 치즈 메뉴로 정했다. 유제품 천국 몽골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피자, 그 위에 있던 치즈가 생각났기 때문에 꼭 몽골 치즈로 만든 요리를 한 가지 더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Fromagerie MACU라는, 몽골 치즈 전문 레스토랑이 있었다. 심지어는 치즈를 직접 만든다고 한다.
치즈의 맛을 많이 느끼고 싶어서 몽골 치즈로 만든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는데, 식전에는 이 집에서 만든 치즈도 내어 주신다. 피자로 먹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깊고 풍미있는 맛. 사장님과 직원 분들도 친절하시고 무엇보다 영어가 통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투어를 같이 했던 언니가 기회가 되면 꼭 몽골 치즈 요리를 하나 더 먹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나 혼자 먹으려니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일행들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내가 친구들 몫까지 맛있게 먹었다.
완벽한 저녁으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한 오늘. 영 기대가 되지 않았던 울란바토르까지 이렇게 매력적이고 보니 몽골은 다시 한 번 내 체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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