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초원을 지나고 나니 이번엔 숲이 나타났다. 몽골에서 이렇게 울창하고 빽빽하게 나무가 자란 곳을 보는 일이 흔치 않아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진짜 트레킹 하는 맛도 나고. 확실히 주변에 물이 많으니 나무나 풀이 잘 자라는데, 이렇게 가는 곳마다 물의 양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게 참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주변 물의 양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일이 없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인데 몽골을 여행하고 보니 이렇게 어딜가나 식물이 자라기에 충분한 물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인 것 같다. 덕분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씻는 것도 큰 불편함 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지방 어딜 가나 물놀이도 할 수 있고.
그나저나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점점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산이 스펀지처럼 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 원래 나 있던 길이 사라져있기도 하고, 잘못 밟으면 발이 깊이 빠질 것 같았다. 길에 데크가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푹신한 흙을 밟는 느낌이 참 좋았다. 이럴 때마다 가이드님은 앞서 가서 발을 디뎌도 될 만한 곳을 미리 짚어가며 알려주셨고 어떤 곳은 앞서 간 사람이 만들어 둔 듯한 간이 다리도 놓여 있었다. 부실해 보이는데 건너는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잘 버텨준 귀여운 다리.
날이 선선하기도 하고 큰 경사도 없어서 길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척척 걸어갈 수 있었다. 평소에 등산을 다니던 보람이 있다. 힘든 기색 없이 가는 나를 보고 가이드님이 폭풍 칭찬. 몽골 사람들은 참 순하고 칭찬에 후하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 좋은지 어제 만났던 숙소 스텝은 연신 나를 보며 예쁘다, 여행 다니는 게 멋지다, 자기는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계속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덕분에 여행하는 내내 기분이 쉽게 좋아지곤 했다. 이번에도 그 칭찬 덕분에 더 쑥쑥 힘이 났다.
산 넘고 물을 건너다 보니 어느덧 길이 조금 수월해지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언덕길이 나타났다. 이 코스에 야생화가 많다면서 어제 여행사 직원 분이 야생화 소개 자료를 함께 보내주셨었는데, 과연 이래서였구나 싶다. 모든 야생화를 하나하나 짚어볼 만큼 관심이 많진 않지만, 한때 야생화 동호회에 들기도 했던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이 꽃을 보면 분명 좋아할 텐데 하면서. 같이 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쁜 대신 조금 지저분하고 많이 불편한 몽골 여행은 좋아하지 않겠지.
트레킹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오늘의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타이밍 좋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해가 나면 걷긴 좀 힘들어지겠지만 파란 하늘과 함께 드러난 풍경이 너무너무 예뻐졌다. 강한 몽골의 햇볕을 피하려 모자를 눌러쓰고 한동안 풍경을 감상했다.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고 풍경을 한참 바라본 뒤에 조금 내려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밥을 먹었다. 가이드님이 같이 먹을 샌드위치도 챙겨와 주신 덕분에 나는 배가 찢어지도록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은 GS25 삼각김밥과 CU 샌드위치. 밥을 먹고 있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몽골인지 모르겠다. 몽골 사람들은 농담으로 편의점이 집 안까지 들어오겠다고 한다는데 과연 그럴 만도 하다.
몽골올레 트레킹 코스는 등산이라기보다 둘레길 코스이기 때문에 높은 곳을 찍었다고 해서 길이 쉬워지는 건 아니었다. 예쁜 풍경을 실컷 감상했으니 다시 길을 나서야지. 선크림도 챙겨 바르고 잠깐 스트레칭도 하고 준비를 한다. 가이드님은 체구가 작은 내가 걱정이 되는지 연신 더 쉬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쉬면 더 힘든데! 내려가는 길엔 이렇게 귀여운 (독)버섯도 보고 예쁘게 핀 꽃들과 파란 하늘을 실컷 보면서 길을 걸었다. 생각보다 진도가 빨라 오늘의 일정이 좀 더 빨리 끝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이드님의 말씀에 더욱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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