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더워지니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진창에 발이 슬슬 빠지기 시작하고. 발을 빠지는 걸 피하려 어쩔 수 없이 언덕 아래의 둘레길이 아닌 언덕 위쪽으로 피해 가려다 보니 코스가 더 길어지고 힘들어졌다. 다니다 보니 발이 너무 깊이 빠져서 도저히 이동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이 나왔는데,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가이드님이 위험해서 안 된다며 기어이 나를 업고 길을 건너 주셨다. 몽골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쪘을 것 같은데...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가이드님.
걷다 보니 길이 탁 트인 언덕이 나타났는데, 얼마나 꽃이 많이 피어 있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없어 이렇게 예쁜 초원을 전세낸 것처럼 걸을 수 있다니 가슴이 벅찼다. 파란 하늘 아래에 이렇게 초록초록하고 꽃이 잔뜩 피어있는 초원이라니 정말 현실감이 없는 풍경이었다.
이쪽은 길이 꽤나 잘 닦여 있었는데 길가에 무려 쉴 수 있는 정자도 있고 간이 화장실도 있었다. 화장실은 도저히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드넓은 초원이 모두 화장실인 몽골 사람들에게는 꽤나 큰 배려가 아닐까 싶다. 화장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차마 들여다볼 용기가 나진 않아서 가까이 가진 못했다. 슬슬 더워서 다른 생각이 안 들기도 했고.
길을 가다가 귀여운 강아지도 만나고 아직 덜 익었지만 딸기도 따먹어 보았다. 작은데도 향이 강해서 그 맛이 아직도 입에 맴도는 것 같다. 하늘을 나는 매가 우는 소리도 들어 보고, 멧돼지나 야생 토끼 이야기 같은 것도 재미있게 들었다. 가는 길에 근처에 사슴도 있었다고 하는데, 워낙 예민한 동물이라 내가 발을 돌리자 사라져 버렸다. 가이드님은 몽골 사람답게 꽤나 멀리 있는 것까지도 잘 보고 알려주셨다. 매번 참 신기하다. 나는 현장학습 나온 초등학생처럼 가이드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면서 힘든 줄 모르고 길을 걸었다.
날이 덥고 습한데다가 나무와 풀이 많으니 아래쪽 그늘엔 모기가 아주 많았다. 걸어 다녀도 물어뜯는 통에 앉아서 쉴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모기 방지 스프레이나 팔찌 필수). 이럴까 봐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옷을 다 뚫고 물어뜯었고 산모기라 독한지 꽤나 오랫동안 간지러웠다. 스프레이를 산까지 들고 왔어야 하는데, 후회막심이었다.
그래도 금세 산 아래에 도착했다. 모기들이 재촉해 준 덕분에 예상보다 두어시간 빨리 일정을 끝낼 수 있었다. 발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너무 상쾌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몽골의 트레킹 코스도 정복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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