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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5-3. 따로 또 같이

by 이냐니뇨 2023. 9. 12.

신나게 보드게임을 하고 나서 비는 그쳐가고 있었지만 친구들은 낮잠으로 체력을 충전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캠프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잠은 차에서 자면 된다는 주의라 낮잠은 필요 없는 체력왕.
 
 
캠프 옆 언덕 꼭대기에 소욤보(몽골 국기)가 꽂힌 커다란 어워가 있는 걸 봤었다. 매일같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좁은 게르에서 잠을 청했더니 몸이 찌뿌둥해지기도 했따. 가까이 가보니 오를만 하다고 생각해서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상 발을 디디고 나니 슬리퍼를 신고는 미끄러질 것 같아 걱정스러워서 발에 힘을 꼭 주고 걸어야 했다. 좀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몽골은 어디든 들판에 가축들의 똥이 널려 있는데(때에 따라서는 사람 똥도 있는 곳도 있겠지..) 슬리퍼를 신고 언덕을 올라가려니 여러모로 신경쓸 게 많았다.
 
그래도 언덕은 높지 않아서 15분 정도만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는 길에 여러 가지 들꽃도 피어 있고 호수가 다 내려다보이는 게 몹시 예뻐서 마음이 트였다. 몽골은 공기도 시원하고 좋아서 상쾌하게 느껴졌다. 위에도 가득한 날파리 떼만 빼면. 아마도 똥 때문에 벌레가 많은 것 같아서 좀 찝찝한 기분이었다.
 
 

 
 
바로 아래가 물가인 절벽이고 해서 이 어워에서는 소원을 빌며 돌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슬리퍼까지 신고는 좀 위험해보였다. 대신 큰 돌 위에 걸터 앉아서 캠프에서는 보이지 않던 호수 반대쪽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날씨가 건조하기 때문인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주변은 바짝 말라 있었고 구름도 걷히고 있었다.
 
 

 
 
캠프를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물이 맑은 호숫가의 모래사장까지 발이 닿았다. 고운 모래는 아니었지만, 홉스골 호숫가는 온통 자갈밭이었는데 마치 해변가 같은 모래사장이 반가웠다. 가이드님이 호숫가 얕은 곳에서 물놀이를 해도 괜찮다고 하셨었는데, 날이 추워 그건 엄두도 못 냈던 우리. 그런데 호숫가로 내려와 보니 물이 너무 맑아서 한 번 들어가보고 싶었다.
 
나는 발을 담그고 물가를 걸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는 캠프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홉스골의 얼음장 같은 물만큼은 아니어도 물이 제법 찼다. 피곤이 쌓인 발에 차가운 물이 닿으니 상쾌하고 좋았다. 발바닥에 천연 쿨링 패드를 붙인 것 같은 느낌!
 
 

 
 
호숫가를 걷고 내친 김에 게르에 놓여 있던 매트를 챙겨 나와 호숫가에서 간단히 요가 스트레칭을 했다. 몇 년 전 다낭 바닷가에서 해본 이후 야외에서 하는 요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또다시 그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다. 찌뿌둥했던 몸도 시원하게 풀렸다. 어느덧 잠에서 깬 친구들이 게르 밖으로 나와 낄낄거리면서 내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돌아다니고 나니 또다시 고파오는 배. 짐승도 아니고 이렇게나 본능에 충실하게 지내고 있다. 오늘도 샐러드, 본식, 디저트의 3코스 저녁이 나왔는데 무려 토마토 스파게티가 저녁 메뉴로 등판했다(이건 파스타보다는 스파게티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생면으로 만들었는지 면도 쫀득하고 맛있었다. 덕분에 또다시 접시를 싹싹 비운 저녁. 디저트 초콜릿까지 맛있게 해치웠다. 몽골 음식 누가 맛 없다고 했어?
 
 

 
 
오늘의 게르는 다른 날보다 작아서 난로에 불을 피워두고 자면 불똥이 튀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게르를 자기 전에 충분히 데워둔 뒤 불이 꺼지도록 하고 자야했는데, 몽골의 새벽 기온이 얼마나 낮은 지 잘 아는 우리는 차마 불을 약하게 떼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불을 피우러 온 직원 분도 난로에 장작을 한가득 넣어주셨다. 우리도 새벽 호숫가의 기온이 걱정되어서 불을 약하게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증막이 된 게르는 도저히 안에 있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우린 빨래만 잔뜩 널어 놓고(항시 천연 가습기가 구비되는 우리의 게르) 문간 바로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호수 위로 뜨는 별을 보며 어제 남겨 놓은 초코 와인이랑 맥주를 마셨다. 몽골에서 산 크래커 위에 챙겨간 참치를 올 까나페도 만들었는데 접시가 없어서 감자를 구워먹으려고 챙겨 갔던 호일을 펼쳐 접시로 썼다. 몽골에서의 잇몸 라이프. 열심히 찾았던 까나페용 크래커는 달지 않고 참치랑 몹시 잘 어울려서 맛있었다. 등은 따숩고 바람은 차갑고, 눈 앞에는 별이 보이고. 맛있고 즐겁고 행복했다.
 
 

 

 

🔥 몽골에서 터득한 난롯불 지키는 노하우

  • 처음 불을 피울 때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좋습니다.
  • 불을 피울 때 쓰는 불쏘시개로 휴지는 좋지 않아요. 상자나 계란판 같은 두꺼운 종이가 좋습니다.
  • 어느 정도 따뜻해지고 나면 불의 기세가 좀 약해지길 기다렸다가 크고 덜 마른 나무를 넣습니다. 이런 나무가 불이 은은하게 오래 가요.
  • 깨어 있을 땐 1시간에 한 번씩 불을 봐줘야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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