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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6-1. 많은 돌들의 계곡(촐로트 계곡)

by 이냐니뇨 2023. 9. 13.

캠프의 조명이 너무 밝아 별을 찍기 힘들던 어제의 캠프. 24시간 샤워실을 운영하는 건 좋은데 그런 곳은 소등도 안 해서 이런 부작용이 있다. 덕분에 별 사진을 찍기 힘들어 미련 없이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자기 전엔 게르를 최대한 덥히느라 난로를 세게 떼서 잠들기가 힘들었고, 불이 평소보다 일찍 꺼진 호숫가에서의 아침은 역대급으로 추웠다. 자기 전엔 침낭으로 열기를 막아보겠다고 바리케이드처럼 준비해 두고 잤고, 새벽에는 추위에 잠에서 깬 뒤 옆에 놓인 침낭을 돌돌 말고 잠을 청했다. 잠결에 침낭의 바깥쪽(바스락거리는 면, 안쪽은 극세사 같은 재질이라 더 따듯하다.)을 몸에 닿게 하고 자는 바람에 다시 한번 벌벌 떨어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목이 칼칼해지고 몸이 부은 것 같았지만 아침에 따듯한 차로 몸을 녹이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제는 익숙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걱정은 뒤로 미뤄두었다. 오히려 일찍 깬 덕분에 오늘도 좋아하는 일출을 보러 슬며시 밖으로 향해보는 강철 체력 몽골 체질(친구들이 인정해 줌)의 나. 몽골에 오고 나서 아침마다 구름도 거의 없는 완벽한 날씨로 하루를 시작한 것 같다.

 

 

테르힝 차강 호수 위로 떠오르는 해.

 

 

씻고 아침을 챙겨 먹는데(고정 아침 시간이 7시 ~ 7시 반이 되었다), 홉스골에서 먹은 반탄(양고기 수프)도 나왔는데, 반갑게 한 입 먹어봤지만 이번에 나온 건 양 냄새가 심하고 짜서 많이 먹기는 힘들었다. 그 대신 익숙한, 직접 끓인 우유(오늘은 찬 우유)에 시리얼이 나왔고, 반갑게도 몽골에서 처음 보는 수박이랑 몹시 신선해보이는 잼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과육이 알알이 살아있는 잼이었는데 많이 달지 않고 상큼한 게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앵두잼이랑 비슷한 맛이 났다. 이 열매는 '링곤베리'라고 했는데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따서 먹는 것이라고 한다. 몽골에서 많이 나는 것 같았다. 평소에 단 잼은 잘 먹지 않는 내 입맛에도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한국에 싸가고 싶을 정도로. 몽골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 중 탑 5에 들 것 같다.

 

 

 

 

우리는 곧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바로 촐로트 계곡(또는 촐로트 협곡, Chuluutiin Canyon). 테르힝 차강 호수에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 이곳도 역시 옛날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용암이 지나간 자리가 깊이 파였고 그곳으로 물이 흐르면서 오늘날의 계곡이 되었다고. 화산 지대라 석회 성분이 많은지 물이 맑고 깨끗한 게 아니라 흰색 물감을 섞은 듯 탁한 느낌이 났다. 덕분에 물이 초록색처럼 보였다.

 

촐로트는 몽골어로 돌이 많다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계곡 가득 작은 돌들이 쌓여 있기는 했다. 가이드님의 이름처럼 뭔가 시적인 의미를 기대했는데 몹시 직관적인 이름이라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이곳과는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고 발음이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다.

 

 

예쁜 사진을 찍고 싶어 절벽 가까이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나를 보며 조심하라고 일러준 가이드님은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나서셨는데, 차마 내색하진 못했지만 결과물은 처참했다. 너무 가까이서 비뚤게 찍어주신 것. 사진 기사님이 아니시니까 어쩔 수 없지. 친구들에게 슬쩍 가이드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을 보여줬더니 한 번 빵 터진 뒤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때는 사진 찍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고 사진도 잔뜩 찍어주는 친구들과의 여행 너무 좋다.

 

 

 

 

우리가 실컷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고 있자니 한 몽골인 가족도 놀러 왔다. 어린아이들이 많았는데 몽골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절벽 끝으로 가는데도 붙잡지도 않고 안아 올리지도 않는 신기한 나라. 어린아이들이 말을 타는 것도 그렇고, 몽골은 서바이벌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귀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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