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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4-2. 조용한 시골 마을 자르갈란트

by 이냐니뇨 2023. 9. 3.

 

 

하늘이 가까워서 구름의 그림자까지 또렷하게 보이는 초원을 한참 달리다가 자그마한 시냇물이 흐르는 언덕에 멈춰 섰다. 예쁘다며 감탄을 내뱉는 우리를 보고 기사님이 차를 돌려세워주신 것.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기사님은 장거리 운전에 피곤하신 초원에 드러누워 쉬셨다. 길을 건너는 말 떼를 뚫고 지나가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초원을 휴게소로 쓰는 것도 그렇고 몽골 사람들은 자연과 진정으로 어울려 살 줄 아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자연과 사람을 진심으로 동등한 위치에 두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다고 할까?

 

 

예쁜 초원을 보면서 감탄하며 사진도 찍고 맑은 개울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며 우리도 뻐근해진 몸을 풀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기사님의 허락을 받아 푸르공에 올라가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 선 우리의 푸르공이 장난감처럼 귀엽게 보였는데 막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꽤 높았다. 차 위에 있는 짐을 싣는 프레임 위로만 발을 올릴 수 있다 보니 자세가 불편했는데, 그런 채로 꼭대기에 서있자니 너무 무서워서 오래 서있을 순 없었다. 그래도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그 뒤 3~4시간을 더 달려 우리는 자르갈란트의 Shine Jargal 여행자 캠프에 도착했다. 자르갈란트는 아기자기한 마을이었고 물 위에 비친 하늘이 너무 예쁜 곳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여행자 캠프는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에서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간 외딴곳에 있었다. 그래서 더 한적하고 좋았다.

 

 

 

 

몽골 여행 4일차. 어느덧 게르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는 능숙하게 짐을 나눠 들고, 직원 분께 큰 짐을 맡긴 뒤(캠프마다 카트를 가져와 게르 앞까지 실어다 주셨다.) 게르를 둘러보았다. 홉스골만큼 좋지는 않아도 깔끔하고 적당한 크기의 숙소였다. 자연 냉장고에 저녁에 마실 것들을 꺼내 두고 짐을 정리한 뒤에 여유롭게 캠프를 둘러보았다. 자르갈란트의 캠프에는 작은 온천이 있었다. 기대한 크기는 아니었고 가평 어느 펜션에서 운영하는 작은 풀장 같은 규모였지만 하루종일 푸르공에 앉아 있던 뒤에 온천을 하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샤워실과 화장실의 위치, 운영 시간을 체크한 뒤에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의논하며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우리의 천연 냉장고.

 

 

인원이 3명인 우리의 저녁 메뉴는 양념갈비 같은 맛의 고기였다. 고기는 산더미처럼 나왔는데 김치는 주먹만큼 나오고 더 없다고 해서 놀랐다. 몽골의 식단은 항상 채소와 고기의 밸런스 붕괴다. 익숙한 맛이라 고기를 밥과 함께 맛있게 먹긴 했으나 고기 양이 워낙 많기도 했고 기름이 많아서 김치가 더 없는 게 몹시 아쉬웠다. 그렇지만 앞서 내어 주신 샐러드도 있고 해서 맛있게 잘 챙겨 먹었다.

 

 

한참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한국인 일행이 양이 많다면서 허르헉을 나눠 주셨다. 허르헉은 보통 일행이 4명 이상일 때 되는 것 같았는데, 그 쪽은 일행이 5명이라 먹을 수 있었나 보다. 몽골 여행을 하면서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던 요리였는데 덕분에 먹어볼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했다.

 

커다란 뼈대가 그대로 보이는 허르헉을 보고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기사님께서 옆에서 살을 발라 접시에 놓아주시고 하시고 뼈대를 집어다 주시기도 하며 살뜰히 챙겨 주셨다. 그릇 안에 저 노란 채소는 몽골의 황무랑 당근인데, 한국에서 먹는 무나 당근보다 훨씬 맛있었다. 사실 나는 익힌 당근의 식감과 향을 좋아하지 않는데, 몽골 당근은 그런 향이 없고 달짝지근하니 맛있었다.

 

허르헉은 돌을 달군 뒤 솥에 고기와 함께 넣고 쪄낸 요리이다.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아 누린내가 난다는 사람도 많아 조금 걱정하면서 먹었는데, 고기가 신선했는지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기름이 많은 부분은 조금 질기기는 했는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놀랐던 건 찐 음식인데도 불맛이 났다는 거다. 아마도 돌을 달구는 과정에서 돌에 숯 내음이 배었나 보다. 양념은 담백하지만 불맛 덕분에 더욱 맛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오늘도 배가 터지도록 먹어 치운 우리였다.

 

 

 

 

우리는 별이 뜨는 거나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노천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씻지 않고 좀 쉬다 가기로 했다. 샤워실을 11시까지 한다고 하셔서 9시쯤 씻고 온천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캠프 옆에도 개울이 있어서 들어가 발을 담그기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마침 캠프 앞마당에 정자 같은 곳이 딱 2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냅다 뛰어가 자리를 선점하고 앉았다.

 

저녁이 되니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해서 자연 냉장고에 놓은 맥주가 조금은 시원해지고 있었다. 오늘도 캠프를 보면서 맥주 한 잔 씩. 통풍이 오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몽골에서는 맥주를 실컷 마셨다. 하지만 이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나는 사실 여행지에서 낮술 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왠지 낮술을 하면 굉장한 일탈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가 긴 몽골에서는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먹는 맥주도 낮술처럼 느껴져서 몹시 좋았다. 이게 여행이지.

 

 

 

실컷 여유를 부린 뒤에는 핸드폰도 내려놓고 온천을 즐겼다. 규모가 작은 곳이었지만 손님이 많지도 않아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저 멀리에서 보랏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온천을 즐겼다. 운영시간이 길지 않아 온천에서 별을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얼굴로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게 바로 온천의 매력이구나. 한국에서는 사실 공중목욕탕이나 온천 같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는데 몽골에서 처음 그 매력을 배우게 됐다. 아마 한국에서도 온천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될 것 같다.

 

 

우린 온천을 즐기고 돌아와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가 오늘도 자정 무렵 밖으로 나갔다. 시골로 왔더니 또다시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은하수가 아주 또렷하게 보여서 1시간 정도 별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은하수가 움직이는 것까지 눈에 띌 정도였다.

 

어제 홉스골에서 누워서 별 보는 맛을 알게 된 덕에 옷을 조금 더 단단히 껴 입고 돗자리를 챙겨서 나갔다.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우니 푹신했다. 카메라는 삼각대에 두고 우리는 돗자리에 누워 가만히 별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주에 나와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밤하늘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도 들어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날 하늘에 몇 번이고 별똥별이 떨어졌다. 별똥별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고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많은 별똥별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 오늘도 너무 행복하고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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