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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4-1. 여긴 유제품 천국이야

by 이냐니뇨 2023. 9. 2.

이틀 동안 머물렀던 천국 같은 홉스골을 떠날 시간이 왔다. 7시에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곳. 우리에게도 바다가 된 홉스골을 떠나야 한다는 게 몹시 아쉬워서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를 한 번 더 보고 가기로 했다. 게르 문을 나서니 바로 앞에 소가 와 있었다. 이게 바로 몽골이지.

 

 

 

 

홉스골에 오기 전에는 호숫가에서 조깅을 하고 싶다는 로망 같은 것이 있었는데(운동용 레깅스도 챙겨 간, 로망에 진심인 사람) 솔직히 몽골은 길이 너무 안 좋아서 조깅을 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풀밭의 풀은 길이가 길고 야크나 소들이 출퇴근하면서 똥이 널려 있었기 때문에 걷는 것도 똥을 피해 다니느라 더뎠다. 호숫가는 자갈밭이라 역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잘못 뛰다간 무릎이 나갈 것 같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산책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7월에는 해가 늦게 지는 만큼 뜨기도 일찍 뜨는데 아침 5시 반 정도면 일출이 시작된다. 6시에 나가서 본 호수는 이미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출 보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윤슬이 반짝이는 이른 아침의 호수도 몹시 아름다웠다. 어느덧 동물들도 출근하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아침은 조식부페였다. 오늘의 수프는 몽골 사람들이 해장용으로 많이 먹는다고 하는 반탄(또는 반탕)이라고 하는 국물요리였다. 양고기로 육수를 내고 밀가루를 작게 떼어 내 밥알처럼 만든 반죽과 간 양고기가 들어 있는 음식이었는데 갈비탕과 아주 흡사한 맛이었다. 오늘 장거리 이동이 예정되어 있어, 어제는 새벽까지 먹고 마시고 놀았던 참이라 속이 풀리고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피자였다. 까나페 대신 피자가 나와서 아침부터 피자라니, 의아하던 참이었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 조각씩 집어왔다. 그리고 갓 나온 피자를 한 입 먹는 순간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치즈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몽골에 유제품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피자는 생각도 못했는데... 맞아, 피자 치즈도 같은 민족이었어!

 

 

 

 

오늘은 약 310km를 이동해야 하는데다 그중 2/3이 비포장 도로인 날이었다. 푸르공의 승차감은 날 것 그 자체였기 때문에 비포장 도로를 갈 때는 몸이 통통 튀어 올랐다. 배테랑인 운전기사님은, 펭귄이 얼음판 위에 뚫린 구멍 속으로 떨어지지 않게 피하는 남극탐험 게임처럼 길의 움푹 패인 곳들을 피해 가면서 운전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돌이라도 밟을라 치면 차가 튀어 오르는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 안에서 보는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우리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꼭 다시 한번 오고 싶은 홉스골과 작별 의식을 하는 것처럼, 말도 없이 한참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홉스골이 더 이상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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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행이 3명이었기 때문에 푸르공 뒷좌석에는 하루 한 명씩 돌아가면서 누워 가기로 했는데, 오늘은 그게 내 차례였다. 친구들은 놀이기구보다도 더 익스트림한 이 차의 뒷자리에서 누워 갈 내가 걱정되어 고맙게도 힘들면 자리를 바꿔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역시 기우였다. 나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 30분 정도 앉아 풍경을 바라보다가 곧 자리에 누웠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푸르공 뒷좌석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나는 거의 2시간을 내리 잤고 눈을 떴을 때는 또 다른 마트 앞이었다. 오늘은 시골로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마트에 조금 일찍 들렀다. 간단하게 간식과 (또) 맥주를 사서 나왔다. 그리고 가이드님께 혹시 몽골에서 와인도 만드는지 여쭤봤는데, 무려 초코맛 와인을 만든다고 하시는 거다. 이름도 초코라는 그 와인은 디저트 와인이었는데 민트맛, 딸기만, 바닐라맛이 있었다. 우리는 그 맛이 궁금해져서 바닐라맛을 한 병 집어 봤다. 한 병에 22,000 투그릭이 조금 안 되었으니 한 병에 9천 원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나는 따로 몽골 케첩이랑 소금도 기념으로 샀다. 오늘도 만족스러운 몽골에서의 쇼핑.

 

몽골의 큰 마트 근처에는 작은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얼음은 구하기 힘들지만 아이스크림은 많은 나라. 이런 게 몽골이지. 그동안은 시골이라 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을 수 없었는데 자르갈란트로 향하는 길에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마침 쨍한 날씨에 덥던 우리는 몹시 반가워하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이곳의 아이스크림은 우유맛이 정말 진하고 부드러웠다. 더운 날씨에 속절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하기에 허겁지겁 먹어 치워야 했지만 그 맛은 잊을 수 없었다.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라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다. 지난 주에 많이 온 비 때문에 길이 좋지 않아서 예정보다도 일정이 지체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 곧바로 차에 올라타 길을 나섰고 중간중간 밖을 내다볼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몽골의 초원을 달리면서 악뮤의 다이너소어(Dinosaur)를 들었는데, 태초의 자연 같은 모습의 몽골 풍경과 찰떡같이 어울렸다. 오늘도 몽골의 초원은 새로운 모습이었고 몇 번을 봐도 질릴 줄을 몰랐다. 차에서 다 같이 팟캐스트도 듣고 음악도 들으면서 갔더니 지루한 줄을 몰랐다.

 

 

 

 

우리는 곧 작은 건물 서너채가 있는 작은 마을에 섰다. 그중 하나가 오늘의 점심식사 장소인 듯했다. 낡고 작은 건물에는 테이블이 몇 개 있고 제대로 된 메뉴판도 없이 칠판에 손글씨로 메뉴가 쓰여있을 뿐이었다. 몇 사람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외지인인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투박한 테이블 위로 모양이 제각각인 그릇과 컵이 놓였고, 컵이 모자란 듯 그 중 2개는 밥공기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우리는 마치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것 같다고 웃어댔다. 오늘의 메뉴는 산더미 호쇼르. 가게마다 모양도 다르고 맛도 조금씩 달랐는데 매번 맛있었다. 갓 튀겨 나온 호쇼르의 맛은 잊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 더운 날에도 기사님은 찬 음료는 드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수테차라고 하는 따뜻한 음료만 드셨는데, 몽골식 밀크티라는 그 맛이 궁금해졌다. 신기해하는 우리를 보며 가이드님은 한 번 나눠 먹어보라면서 수테차 한 잔을 주문해 주셨다. 워낙 몽골 음식에 대한 혹평을 많이 봤던 터라 조금은 긴장하면서 한 입 먹어 봤는데, 갓 짠 우유에 찻잎 약간과 소금을 넣고 끓인 수테차는 마치 사골국물 같은 맛이 났다. 튀김에는 탄산음료가 진리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 따뜻한 수테차와도 잘 어울린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이번에도 한 끼 맛있게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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