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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3-4. 쵸!쵸! 드디어 말을 타다(홉스골 승마 투어 후기)

by 이냐니뇨 2023. 9. 1.

 

 

저녁에는 승마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투어 시간인 오후 5시에 맞추어 캠프 입구 근처에 말이 모여있던 승마장으로 향했다. 비 온 뒤라 날이 쌀쌀해지기도 했고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아서 판초를 챙겨 갔는데, 색이 화려하고 몸집을 커보이게 하는 판초는 바람에 펄럭이면 자칫 말을 놀라게 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한 쪽에 있던 바위에 판초를 올려 두고 고 골라 주시는 말에 하나씩 올라 탔다.

 

 

말을 타기 전에는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하게 되어 있다. 몽골에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의 후기에서 봤던 거라 당연한 듯 받아들고 곧바로 서명을 했는데, 가이드님이 읽고 하는 게 맞냐고 물으실 정도였다. 다음엔 읽는 척이라도 해야지...

 

나는 예전에 캐나다 여행 중 말을 타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훈련 받은 말은 순하기도 하고 정해진 길만 간다는 사실을 배웠던 터라 별 걱정 없이 말에 올라탔는데, 말은 처음인 친구들은 겁을 집어 먹었다. 서약서에 나온 내용을 보고 더 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말은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을 만만하게 본다고도 하니 마음을 단단히 잡고 타길 바란다.

 

 

 

 

몽골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울란바토르에서만 몇몇 봤음) 시골에는 한국어도 전혀 못했기 때문에 말을 탈 때도 특별한 안전 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다. 가이드님을 통해 발고리에 발을 너무 깊게 넣으면 혹시라도 낙마했을 때 끌려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정도만 들을 수 있었다. 대신 말은 인솔해주시는 분이 같이 다니면서 타고 빨리 가지도 않아서 갑자기 큰 소리를 내거나 펄럭이는 옷을 입는 등 말을 놀라게 하지만 않으면 위험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언덕이나 산길도 없고 평지를 걷는 거라 균형을 잡아야 한다거나 하는 어려운 일도 없었다. 말은 똑똑하고 순한 동물이니 얌전히 잘 타면 괜찮다.

 

승마 투어는 한 시간 동안 호숫가를 따라 산책하는 코스였다. 하루 종일 바라 본 호수지만 배 위에서 보는 것, 말 위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보지 않은, 이따 한 번 가보자고 이야기 했던 방향으로 향하는 코스라 더 만족스러웠다. 캠프 주변을 구석구석 볼 수 있는 기분이라서. 말을 타고 아름다운 호수를 보는 일은 정말 꿈만 같았다.

 

사실 친구들은 생각보다 말이 높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하는데, 나는 키 작은 말을 타서인지 별로 무섭지 않았다. 깔끔을 떠는 성격인 지 진창이 심한 곳은 말도 가지 않으려고 했고 큰 돌도 잘 피해서 가서 평온하게 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따금씩 너무 빨리 가려고 할 때만 고삐를 당겨 제지해주면 말도 잘 들었다. 말 위에 앉아 있는 것도 익숙해지니 오히려 좀더 빨리 가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도 했다.

 

 

 

 

비가 그쳐서 하늘도 예쁘고 공기도 좋았다. 날씨 운이 정말 좋은 게, 말을 탈 때도 비는 한 방울도 맞지 않았다. 아까 소원의 섬도 그렇고 승마 투어도 그렇고, 이건 정말 날씨요정이 점지해주신 날씨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아까만 해도 우박이 그렇게 오더니!

 

 

 

 

하지만 아직 땅도 젖어 있었고 안장도 젖어 있었다. 한참 타고 있으니 안장에서 물이 스며나와 바짓가랑이가 조금씩 젖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말들이 서로 붙어 가려고 했는데(지금 생각해보니 털이 젖어서 추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바람에 다리 한 쪽이 말 사이에 끼는 일이 많았다. 진창을 걷는 말 사이에 다리가 끼이니 내 다리에 흙이 묻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온 뒤가 아니라도 털이 따가울 수 있으니 긴 바지는 꼭 필요할 것 같고 양말도 목이 긴 것을 신으면 더 좋다.

 

바지랑 양말에 흙이 꽤나 튀어서 양말은 낙타를 탈 때 한 번 더 신은 뒤에 버리기로 했다. 같이 탔던 친구는 연청을 입고 탔다가 안장에서 배어 나온 물에 가랑이가 젖어서 뭔가 찝찝한 일을 치른 것 같은 비주얼이 되어 버렸다. 친구의 바지를 보며 우리는 한창을 꺄르르 웃어 댔다(다행히 곧바로 숙소에 세탁을 맡겨서 물은 다 빠졌다).

 

 

 

 

 

승마를 마치고는 저녁을 먹었는데 이날 저녁은 역대급이었다. 샤슬릭이라는 꼬치 요리가 있는데 구워진 고기를 얇게 썰어 채소와 크레이프 같은 얇게 구운 반죽과 함께 내어 주었는데 지금껏 몽골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감히 이 여행자 캠프를 몽골 최고의 맛집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타는 일은 은근히 코어 근육을 많이 써야 했다. 배랑 허벅지가 꽤나 뻐근하고 몹시 출출해졌는데, 식사가 너무 맛있어서 행복해졌다. 몽골 여행을 하면 사람들이 밥을 잘 못 먹어서 살이 빠지기도 한다던데 우리는 아무래도 살이 찔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 그릇을 싹 비웠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면서 해가 지길 기다렸다. 구름이 좀 끼어 있었지만 변덕스러운 몽골 날씨를 보기도 했고 우리 캠프 위에 있던 구름들은 바람을 따라 걷히는 중이었으니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서 별을 봐야했기 때문이다. 몽골에 온 이후 자정까지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가 별을 보는 게 우리의 고정 일정이었다.

 

쉬는 동안 친구들은 잠시 짐을 정리하거나 낮잠을 잤고 나는 따듯한 옷으로 바꿔 입고 밖으로 나가 해가 지는 걸 보고 왔다. 구름이 노랗게 물드는가 싶더니 곧 핑크색으로 또 보라색으로 바뀌는 모습이 정말 그림같이 예뻤다. 이런 풍경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필름 카메라도 챙겨 갔다. 아직 현상은 안 했는데 어떤 사진이 찍혔을 지 너무 기대된다.

 

 

 

 

홉스골 천연 얼음물을 길어 와서 맥주를 식혀 놓고 오늘 야식으로 구워 먹을 감자를 씻기도 했다(한국에서 호일을 챙겨 가서 잘 쌌다). 몽골에서는 하루 종일 여유로운듯 하면서도 자분자분 할 일이 계속 있어 마냥 쉬기는 어렵다. 우리는 세 명 뿐이라 할 일을 나눌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감자를 사실 맛있게 구우려면 불이 활활 탈 때가 아니라 어느 정도 사그라들고 숯이 된 뒤에 감자를 난로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따뜻하게 자려면 불을 꺼뜨릴 수 없지! 약불로 해보려다가 불이 꺼져서 실패했고, 다시 불을 활활 피워주신 뒤에 감자를 난로 위에 올려 구웠다. 걱정했는데 다행히 맛있게 구워져서 가져간 소금에 찍어 맥주랑 야식으로 먹었다. 몽골 감자는 감자와 고구마 사이의 어떤 맛인데, 포슬포슬하진 않고 촉촉하고 조금 달콤하다. 구워먹으면 정말 맛있다.

 

 

 

 

어느덧 자정이 다 된 시간. 밖을 보니 충분히 어두워졌고 구름도 부분적으로 걷혀서 별이 보일 것 같았다. 게르 주변은 조명이 많아 별이 잘 안 보여서 호숫가까지 나가서 별을 보기로 했다. 내가 가져간 핫초코를 나누어 먹으며 벤치에 번갈아 누워가며 별을 봤다. 쌀쌀한 날씨에 핫초코를 마시니까 몸이 녹아서 별을 기다리기에 너무 좋았다.

 

 

 

 

첫 캠프보다 조명이 밝고 사람도 많아서 별은 덜 보였지만 게르 위로 떠오른 별을 보고 있으니 너무 예뻤다. 벤치에 누워서 하늘만 보고 있자니 스노우볼 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호수 반대편의 구름 낀 하늘에는 번개가 내리치는 것이 보였는데, 몹시 먼 곳이었는지 천둥 소리가 우리 귀까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잘 보이다니 신기하다.

 

저 쪽에는 비구름과 번개가 보이는데 구름이 없는 공간에는 오늘도 별이 가득했다. 호수 바로 위까지 가득찬 별을 보기도 하고 게르 위로 보이는 별을 구경하기도 했다. 언제 또 이만큼의 별을 눈에 담을 수 있을까? 별을 보고 있으면서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던 시간이었다.

 

 

 

 

 

🐎 Toilogt 홉스골 승마 투어 정보

  • 소요시간 : 약 1시간
  • 복장 및 준비물
    - 필수 : 모자, 긴 바지
    - 추천 : 목이 긴 양말, 장갑, 운동화(슬리퍼 X)
  • 주의사항
    - 갑자기 움직이거나 큰 소리를 내는 등 말을 놀라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
    - 말은 반드시 왼쪽에서 타고 왼쪽으로 내린다.
    - 몸을 앞으로 숙이면 말에서 떨어질 수 있으니 살짝 뒤로 젖힌 느낌으로 앉아야 한다.
    - 고리에 발을 걸 때는 1/3 정도만 걸고, 말에서 혹시라도 떨어지면 얼른 발을 고리에서 빼야 한다.

우리가 탔던 승마 투어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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