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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3-2. 여행이 무사히 끝나게 해주세요(소원의 섬 보트투어)

by 이냐니뇨 2023. 8. 30.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시작할 수 있게 된 우리의 일정. 하루종일 홉스골에만 머무는 일정이니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모였다(몽골에서 그런 날이 흔치 않았고, 한 곳에서 2박을 한 것은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망의 첫 일정은 보트투어였다. 홉스골 호수를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가로질러 '소원의 섬'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으로 가는 코스였다. 그 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전형적인 관광지로 보이는 작은 섬보단 홉스골 호수에서 보트를 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시간 맞춰 나가 호숫가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곧 저 멀리서 우리가 탈 보트가 들어왔다. 홉스골 보트투어는 캠프 앞에 선착장이 있어 거기에 가서 타는 게 아니라, 미리 예약하면 캠프 앞 호숫가로 보트를 가지고 오는 출장 시스템이라고 했다. 아침에 게르 문을 따주신 가이드님이 인솔하는 팀과 우리 팀, 이렇게 두 팀이 보트에 자리를 잡고 앉아 구명조끼를 나눠 입고 자리에 앉았다.

 

 

 

보트는 시원하게 나아갔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보트가 나아가며 일으키는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긴팔을 입었는데도 조금은 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바람막이나 판초를 가지고 타면 좋고, 모자를 쓰려면 날아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신나게 물살을 가로질러 가는데 커다란 구름 하나가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구름이 맑은 물에 그대로 반사되어 보이는 모습이 너무 그림같고 예뻐서 할 말을 잃었다. 무사히 일정을 시작했다는 것에 들떠 신나게 수다를 떨던 우리는 어느새 넋을 놓고 조용히 풍경을 감상할 뿐이었다.

 

 

 

 

맑은 날씨라 햇빛이 강해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는데 우연히 선글라스 아래의 틈으로 물을 봤더니, 호수의 물빛은 선글라스를 쓰고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늘보다도 짙고 푸른 빛. 그리고 그 위에 일렁이는 파도가 아니라면 거울처럼 느껴지는 투명한 물살.

나는 그 광경과 색에 감동해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글라스를 벗고 풍경을 감상했다. 사진을 찍는 것도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사진에는 그 색이 고스란히 담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듣고 선글라스를 벗은 친구도 옆에서 끊임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선글라스를 벗길 잘했다면서. 과연 선글라스로 왜곡해서 보기는 아까운 색이었다. 사진으로는 절대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넓고 아름다웠던 홉스골 호수. 지금도 그 광경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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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분 정도를 달려 소원의 섬에 도착했다. 섬이라기 보단 작은 돌산 같은 곳이었다. 입구에는 작은 선착장이 있고, 꼭대기로 이어지는 가파른 돌계단이 바로 앞에 있었다(운동화 필수! 마실 물도 필수!). 놀랍게도 이 계단을 따라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줄지어 있었는데, 의외로 예쁘고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많았다. 크로스백, 열쇠고리, 마그넷이나 팔찌같은 것들. 이 곳에서 색색의 귀여운 유리잔을 봤는데, 다른 곳에서 찾지 못해서 여행이 끝나도록 그것들을 사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 잔에다 함께 술을 먹었다면 더 즐거웠을 텐데, 하면서.

 

그리고 눈을 돌렸을 때는 에메랄드빛 그대로의 물이 일렁이고 있었다. 물이 너무 맑고 투명해 바닥의 돌 하나하나까지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조금 더 깊은 물 쪽으로 가면 바닥에 있는 차(car)도 보인다는 가이드님 말씀을 듣고 의아해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물이 꽁꽁 어는 겨울에는 호수를 가로질러 썰매나 차가 다니기도 한다고. 그러다 얼음 아래로 빠지는 차들이 간혹 있다고, 물이 워낙 맑아 여름이 되면 아래로 가라 앉은 차가 아래에 보이기도 한다고 하셨다. 차가 얼음 아래로 빠지는 일은 끔찍하지만, 그 위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호수의 풍경도 몹시 아름다울 것 같아서 겨울에도 한 번 더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소원의 섬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말은 취소다. 내가 건방졌다. 전형적인 관광지는 맞지만 아직 몽골은 순박한 나라인지 길가에 있던 기념품 좌판들이 다였다. 게다가 섬 위로 올라가서 보니 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보여서 너무 예뻤고 구석구석 사진이 잘 나올만한 멋진 스폿들이 있었다. 날씨마저 완벽해서 더 예뻤던 섬에서 나는 거침없이 사진이 잘 나올법한 곳을 찾아가 자리를 잡곤 했다. 겁이 많은 친구 하나와 가이드님은 처음엔 나를 걱정하는 듯하다가 내가 선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친구들도 곧 같은 자리로 와서 사진을 찍었다.

 

 

섬은 15분 정도면 한 바퀴를 다 볼 수 있을만큼 작았다. 대신 눈 앞을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호수를 여러 각도에서 둘러보기 좋았다. 캠프에서는 배를 타고 20분이 떨어진 곳이었으니 그쪽에서 볼 수 없던 호수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없이 즐거웠다. 거대한 호수의 크기가 뼈저리게 와닿는 광경이었다.

 

섬은 대부분 돌로 되어 있었지만 군데군데 흙 위로 풀이 자란 곳에는 야생화도 잔뜩 피어있었다. 날이 따뜻하고 햇빛이 강하니 꽃도 노란색, 보라색처럼 밝은 색이었다. 그 덕분에 더욱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 덕분에 즐거워하는 분위기가 그날 찍은 우리의 사진에도 그대로 담겼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너무 잘 나왔다. 소원의 섬은 그 자체가 소원 같은 곳이었다.

 

소원의 섬에서 내려다 본 홉스골 호수.

 

 

그리고 섬의 끝으로 가면 '어워'가 있다. 어워는 커다란 돌탑을 쌓아 만든, 소원을 비는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산신당 같은 곳이다. 몽골에는 아직 샤머니즘이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길목 곳곳에 어워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큰 어워의 경우 우리 기사님도 안전 운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들렀다 가시곤 했다. 큰 어워는 제단처럼 여겨지는지 사람들이 먹을 것을 두고 가기도 하는데, 소원의 섬에 있는 어워나 보통의 작은 어워에는 제물까지 두진 않는 것 같았다.

 

대신 소원을 빌면서 아래쪽에 있는 돌을 위로 올린다는 생각으로 바닥에 있는 돌을 주워 어워에 던지고 시계 방향으로 3바퀴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기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소원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어제 겪은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우리의 여행이 큰 사고없이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기원하며 돌을 던지고는 3바퀴를 돌았다.

 

어워 주변을 도는 동안에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그 풍경에 자주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눈에 담고 아껴뒀다가 3바퀴를 다 돈 뒤에 다시 어워 뒤쪽으로 넘어가 호수의 풍경을 감상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어워 너머에서 바라본 호수의 모습.

 

 

섬이 너무 예뻐서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워낙 장소가 협소하고 사람은 많았기 때문에 편히 앉아 쉴만한 공간은 없었다. 아쉽지만 산책을 하면서 돌아보고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도 소원의 섬은 이번 여행 일정 중 가장 좋았던 곳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많이 보여주었다. 홉스골에 간다면 다른 건 몰라도 보트 투어를 꼭 권하고 싶다.

 

 

발길을 돌려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소원의 섬을 떠나는 게 아쉬운 한 편 다시 한 번 시원하게 보트를 탈 생각에 또다시 신이 났다. 뜨거운 햇볕을 그늘 없이 맞으며 섬을 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보트에 다시 앉으니 반바지를 입은 허벅지 윗부분이 달궈지는 것 같았지만, 보트가 출발하 곧 차가운 바람이 열기를 식혀 주었다.

 

 

 

 

섬을 다 보고 돌아가는 길에는 호숫가에 다다라 기사님이 몇 번의 드리프트를 보여주셨다. 방향을 틀 때마다 배가 붕 뜨는 느낌에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롤러코스터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쫄보이건만(회전목마가 제일 좋아!) 여행이라는 도파민 때문인지 친구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인지 무섭기는커녕 재밌어서 더 해달라고 환호를 지를 정도였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탔던 보트 위에서의 경험은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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