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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7-2. 그렇게 몽골인이 된다

by 이냐니뇨 2023. 9. 22.

 

점심은 근처에 있는 몽골 식당에서 먹었다. 식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몽골은 전통 요리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이제는 대부분의 음식을 한 번씩 맛본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극강의 경험주의자라, 식당마다 메뉴판 도장 깨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시골이라 그런 건지 가는 식당마다 메뉴판에 있는 메뉴를 다 시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메뉴판을 보고 어떤 메뉴를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뒤에야 주문할 수 있는 것이다. 시골이라 식재료 조달이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해 본다. 식당마다 주문할 수 있는 건 비슷했다. 쵸이왕(볶음면)이랑 고야쉬(굴라쉬), 호쇼르 같은 것.

 

오늘의 새로운 요리는 (또) 양고기로 끓인 몽골식 칼국수, 고릴테 슐. 몽골어(키릴 문자)로 된 메뉴판은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여행 7일 차가 되니 우리의 취향을 잘 알게 된 가이드님이 먼저 "골고루 시켜 볼까요?"라고 물어 주신다. 시킬 수 있는 메뉴 중 먹어보지 못한 게 있으면 메뉴 설명을 해주시면서 먹어보겠냐고 물어봐주시기도 한다. 센스 있는 가이드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현지 요리를 최대한 다양하게 먹어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양고기로 만든 만둣국을 먹어봐서 비슷한 국물로 끓인 칼국수 요리는 익숙한 맛이었다. 진한 고기향이 나는 육수가 구수하고 맛있었다. 고기 국물에 밀가루면 말 다했지. 맛있게 싹싹 긁어먹었다. 몽골은 면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는데, 면이 길진 않아도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이 정말 좋다. 양념이 담백해서 면 고유의 식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안 그래도 면을 무척 좋아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게다가 고기덮밥에는 몽골에서 처음 만난 피망이 들어 있었다. 평소에 고기를 채소 없이 잘 안 먹는 사람이라, 이런 새로운 채소가 나오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와, 피망이다!"를 외치며 신나게 먹었다. 채소가 이렇게 반갑다니 몽골에 한 달쯤 있던 사람인 줄 알겠다.

 

 

뭐라고 써있는 지 감도 안 오는 메뉴판과 오늘도 예쁜 식당 뷰.
쵸이왕, 소고기 볶음, 고릴테 슐.

 

 

또다시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고 배를 통통 두드리며 다음 일정을 향해 출발. 울란바토르에 가까워지니 다시 대규모의 카놀라 꽃밭이 나타났다. 첫날 우리를 감동하게 만들었던 꽃밭. 다시 만나니 몹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파란 하늘 아래에 펼쳐진 샛노란 꽃의 색이 그림 같았다.

 

몽골에 온 뒤 하루도 빠짐 없이 창 밖 풍경을 보면서 감탄한다. 시끄러운 푸르공에서는 음악을 듣기도 쉽지 않고, 인터넷이 안 되니 핸드폰을 보고 있을 것도 없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계속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아서 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깨어있는 동안은 바깥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매일매일 새롭게 예뻤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지만 한결같이 웅장하고 멋진 풍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카메라를 들 때가 많았다. 정말 시력이 좋아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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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뜨겁고 전통의상 체험 후에 더위에 허덕이고 있었더니, 가이드님은 한낮의 사막은 무리일 것 같다고 판단하셨다. 우선 오늘의 캠프에서 좀 쉬다가 해가 질 무렵에 사막으로 가기로 한다. 일행 중 한 명이 더위를 먹은 듯 컨디션 난조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사실 나도 햇살이 너무 따가워서 사막에서 낙타 위에 가만히 있을 자신이 없긴 했다. 우린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릴지도 모르고 이 소식을 반겼다.

 

 

오늘의 숙소는 Bichigt Khad 여행자 캠프. 한보즈 휴게소 바로 뒤에 위치한 여행자 캠프다. 게르에 들어서면서 우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난로가 없는 숙소를 만났기 때문이다. 한가운데 놓인 난로가 없으니 게르가 훨씬 넓어 보였다. 보일러라니! 게다가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높이의 유리문(그동안 하루 한 번씩 머리를 찧는 사람이 있었다.)에 단독 욕실까지. 입구 앞에는 우리 전용 테라스도 있어서 거기 앉아 밤에 별을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테이블 위에는 샴푸와 바디로션, 치약도 놓여 있었다. 몽골에서 어메니티를 만날 줄은 몰랐다.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자연을 가까이서 만끽하는 몽골 여행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문명의 혜택을 최소화한 생활은 당연히 불편함이 따랐다. 그러다 마지막 숙소에서 만난 문명이라니. 새삼 한국에서 누리는 많은 것들이 감사해지는 여행이었다.

 

 

너무 마음에 들었던 오늘의 숙소.

 

 

잠시 쉬고 짐을 정리한 뒤 산책을 하러 길을 나섰다. 오면서 봤던 커다란 카놀라 밭이 숙소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캠프를 둘러보다 보니 우연히 쪽문을 발견했고, 그 앞으로는 길이 쭉 나있었다. 커다란 바위산과 풀밭이 펼쳐진 광경이 선물처럼 나타난 길. 우리는 질리지도 않고 풍경에 감탄하면서 한참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어딜 둘러봐도 버릴 곳 하나 없는 몽골의 풍경. 이런 곳에 올 수 있음에, 일주일이 넘도록 트러블 한 번 없는 좋은 친구들과 올 수 있음에 감사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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