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7-1. 몽골 관광객의 하루 : 에르덴 조 사원과 전통 옷 체험

by 이냐니뇨 2023. 9. 21.

아침 식사는 몽골의 아이스티가 맞아주었다. 아침마다 따뜻한 차를 마시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시원한 아이스티라니. 어느덧 아침에 마시는 시원한 음료가 어색해진 몽골 적응자. 역시 많이 달지 않아서 맛있었고 아침에 먹기 부담도 없었다. 병뚜껑에 감성 문구가 (몽골어가 아닌 영어로) 쓰여 있어서 괜히 추억이 방울방울 샘솟는 아침. "네가 없으면 똑같지 않다"니. 병뚜껑에 쓰기엔 너무 감성적이다 싶었긴 하지만.

 

 

 

 

일정 중 처음으로 관광지에 가는 날이었다. 우리가 갈 곳은 에르덴 조 사원.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이 사원이 있는 도시인 오보르항가이(Övörkhangai)가 몽골 제국의 옛 수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몽골의 국가 종교를 티베트 불교로 지정하게 되면서 수도에 큰 불교 사원을 만들었다. 티베트 불교라는 종교 자체가 내겐 몹시 생소하고 낯선 종교인데, 그 사원이라니. 난생 처음 가 보는 곳이라 몹시 기대가 되었다.

 

 

 

 

참고로 관광지 답게 에르덴 조 사원에는 화장실이 있다. 무려 수세식 화장실. 칸이 3칸 있었는데 안에 들어간 순간 깜짝 놀랄 일이 있었으니... 칸막이가 반만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까 서로의 얼굴이 보였다. 동시에 얼마나 빵 터졌는지. 그래, 역시 이게 몽골이다.

 

 

사원은 몹시 컸고 푸른 풀밭 위에 있어 몹시 예뻤다. 그 옛날에 밥을 지어먹었다는 큰 솥이나 제단 같은 것들이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종교적인 철학도 조금 달랐는데, 여기서는 스님들이 사원에 모여서 마음 수련을 하기는 해도 속세와의 연을 완전히 끊지는 않고, 머리를 바짝 깎기는 해도 빡빡 밀지는 않는다. 화려한 승려복을 입는 건 동남아의 승려들과 비슷했다. 몽골에는 풀이나 채소를 키우기 힘들기 때문일 것 같은데, 고기도 먹고 유제품도 먹는다고 했다. 불경을 외는 중에도 초코파이랑 탄산음료, 수테차(우유로 끊인 차, 몽골식 밀크티)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곳에서는 수련 중인 승려들이 모여서 경전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다 같이 소리를 내는데 저마다의 목소리 톤이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화음처럼 들렸는데, 소리가 울리면서 마치 낮은 음의 종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 어린 사람을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진지하게 읽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특별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게 종교의 힘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영상을 찍을 수 없는 곳이라 그 소리를 담지 못했던 게 아쉽다.

 

이 날은 무슨 날이었는 지 몽골에서 장관급이라고 하는 높은 사람이 전통의상을 입고 염불 외는 곳에 앉아 있었다.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었던 걸까? 우린 운이 좋았다(비록 누군지 모르지만). 몽골 사람들은 전통의상을 일상에서도 자주 입고 이렇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도 잘 입는데, 우리나라도 국회의원들이 생활한복을 입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전통을 지키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원 맞은 편에는 마치 우리나라 국립공원 입구처럼 상가들이 모여 있다. 전통 의상을 빌려 입을 수 있는 곳도 있고 아이스크림이랑 기념품 파는 곳도 있다. 그리고 블로그에서 많이 보았던 독수리도 있었다. 사실 묶여있는 독수리를 보는 건 마음이 아팠는데, 들어 보니 5살까지만 묶어두고 있다가 아직 야생성이 남아있을 때 풀어준다고 한다. 5살까지도 많이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풀어준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궁금해서 나도 팔에 독수리를 올려 봤는데, 12kg이라고 하던가? 정말 무거웠다. 원래도 팔에 힘이 없는 사람이라 바들바들 떨면서 올리고 있었는데, 날개를 펴게 하려면 또 팔을 흔들어줘야 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팔이 며칠 아팠던 것 같다. 그래도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 독수리 체험은 1만 투그릭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전통 의상을 체험할 수 있는 기념품 가게. 모자랑 신발들이 구비되어 있다. 가면 점원 분들이 사이즈를 보고 빠르게 의상을 골라주신다. 대충 어떤 색 취향인지 이야기하면 아주 빨리 골라주시니 걱정 말고 리액션하면 된다. 옷을 일단 고르고 나면 그 옷이랑 맞는 모자도 알아서 가져다주신다. 사이즈를 봐주시고 입혀주시기까지 하니 나는 그저 리액션만 하면 되었다.

 

내가 고른 의상은 징기스칸 시대의 의상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신분이 높을수록 높은 모자를 쓰게 했는데, 고개를 숙이기 불편하게 해서 위엄을 지키는 용도인 것 같았다. 소매도 아주 길게 만들어서 손도 보이지 않게 하고. 모자는 사람을 눈에 잘 띄게 하여 도망갈 수 없게 하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았다.

 

 

"델"이라고 불리우는 몽골의 전통 의상은 화려하고 예뻤지만 아주 두꺼웠다. 추운 몽골의 겨울 날씨를 견딜 수 있는 옷이라 안에 솜도 들어 있었고 바람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신발은 아주 딱딱하고 밑창도 없었다. 발에 모래가 저벅저벅 밟히고 전혀 구부러지지도 않는 데다 무겁기까지 해서 이거야말로 못 도망가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샵에서 사원 입구까지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가 얼마나 힘들던지.

 

우리가 갔을 때는 7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뜨거운 날이었다. 그런 날에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불편한 옷을 입고 걸으니 숨이 막혀왔다. 게다가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을 줄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할 걸. 몽골에서 소원의 섬 가는 날 빼고는 아주 편하게 다녔는데,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으니 화장을 하는 게 훨씬 잘 어울린 것 같았다. 사진을 더 예쁘게 남기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의상체험을 마치고 보니 그 짦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덥고 숨이 막혔는지. 땀이 솟아나기 전에 옷을 벗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한 친구는 더위를 먹었는지 얼굴이 내내 벌게져 있었다. 더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도 괜찮던 우리인데 이 더위에 전통의상 입고 녹다운되게 생겼다. 옷을 벗자마자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가게로 달려가 1,000투그릭(약 400원) 짜리 하드를 집어 왔다. 캔디바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이거 한 입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래도 기억에 이렇게 남는 걸 보면 전통 의상 체험을 하길 잘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