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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1-4. 캠프 입성, 그리고 날씨 요정의 트레킹

by 이냐니뇨 2023. 8. 23.

점심까지 맛있게 먹고 캠프로 가는 길. 오전 내내 실컷 자고 났더니 드디어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놀라울 만큼 초원에 가축들이 많이 있었는데, 차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기사님도 그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기다리기도 하고 사이를 비집고 가기도 하며 능숙한 운전을 이어 가셨다. 한국이라면 길가에 사체 몇 마리는 흔하지 않았을까? 몽골 사람들은 진정 자연과 어울려 지낼 줄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몽골의 길이란 이런 것.

 

 

날씨가 좋으니까 한낮의 날씨는 아주 더웠다. 푸르공의 최대 단점이라면 에어컨이 없다는 것. 60년대에 러시아에서 군용 차량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차는 엔진도 앞 좌석 옆에 있어 열을 내뿜는 와중에 에어컨이 없어서 해가 쨍한 날이면 실내가 무척 더워진다(고비에 푸르공 타고 가는 분들 리스펙). 그래도 몽골 날씨는 건조해서 창문을 한껏 열어 바람을 맞으면 다닐만하다.

 

 

푸르공 앞좌석. 가운데 보조 의자인 척하는 게 엔진이 들어있는 자리다.

 

 

차에는 천장에도 창문이 있어 이 창문을 열면 바람이 아주 잘 드는데, 우리가 탄 차는 아주 낡아서인지 걸쇠 같은 것이 없었다(참고로 방송에 나오는 푸르공들은 최상급 상태이다). 창문을 연 뒤 코르크처럼 생긴 고무마개를 단단히 고정해야 창문을 열고 다닐 수 있었는데 이것마저 노하우가 필요했다. 창문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곳, 몽골이었다.

 

 

 

우리를 실은 차가 어느덧 볼강 여행자 캠프(UNIT)에 도착했다. 초원에 놓인 게르 몇 동이 그림처럼 예뻤다. 시골에 오면 인터넷이 안 터진다고 해서 오기 전 엄마한테 연락이 매일 되진 않을 수 있다고 단단히 일러놓고 왔었는데, 어떤 자리에서는 안 터지는 곳도 있었지만 캠프에선 그래도 3G 인터넷을 쓸 수 있어서 카톡 하는 정도는 문제가 없었다(이동하는 동안 길에서는 인터넷이 잘 안 된다).

 

 

도착하자마자 잠시 쉬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오랑 터거(Uran togoo)라는 사화산으로 트레킹을 간다. 숙소에서도 산이 잘 보여서 바로 옆이라고 생각했는데 차로 비포장도로를 20분 정도 가야 산 아래에 도착하는 거리였다. 몽골은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고 뭐든 큼직큼직하다 보니 거리가 가늠이 안 된다.

 

하여튼 하루 종일 차에 앉아 있다가 드디어 일어나 걸을 시간이 되니 설렜다. 평소에도 등산을 간간히 다니고 여행 가서 트레킹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설레는 첫 일정이었다. 오는 길에 날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 조금 걱정스럽긴 했다. 하루종일 날씨가 쨍쨍해서 이동 중엔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날이 흐려지다니 조금 배신감이 들었다. 가이드님은 노련하게 하늘을 보면서 날씨를 가늠하다가 바로 출발하자고 말씀하셔서 길을 나섰다.

 

 

한 쪽에 비가 잔뜩 오고 있는 몽골의 하늘.

 

 

오랑터거는 해발 1,680m나 되지만, 주변 지형이 높아 해발 고도가 이런 거고 실제로 올라야 하는 높이는 100m 남짓밖에 안 된다. 넉넉잡아 걸어서 30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이라는 뜻. 대신 한국의 등산로처럼 계단이 있거나 길이 잘 닦여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연 그 자체의 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곳에 풀이 나지 않는 정도. 길이 좋지 않고 가파른 편이라 같이 간 친구는 오르기 좀 힘들어했다. 사람도 차도 자연 그대로의 길로 다니는 나라 몽골이었다. 슬리퍼나 단화를 신으면 미끄러워서 위험할 수 있고, 운동화는 신어야 하는 곳이다. 나는 트레킹 샌들을 신고 갔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흙에 발이 조금 더러워지는 게 고충이라면 고충).

 

 

 

 

가이드님의 예감이 맞았는지 산 아래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좀 오는가 싶었는데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다 금세 그쳤고,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구름마저 걷히고 있었다. 날이 흐려서 오히려 덥지 않게 트레킹을 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정상에서 보이는 작은 분화구와 우거진 숲이 또 다른 느낌이라 너무 예뻤다. 분화구 쪽으로 내려가 천지를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는 모양인데 나는 같이 간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서 정상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너무 예쁘고 좋았던 오랑 터거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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