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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1-2. 도시락 먹고 갈래요?

by 이냐니뇨 2023. 8. 20.

해 뜰 녘 탁 트인 초원의 평화로운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우리 일행은 뉴질랜드 여행을 하면서 만났는데(언젠가는 뉴질랜드 생활 이야기도 꼭 써야지...), 바깥 풍경을 보면서 동시에 여긴 정말 뉴질랜드 같다고 했다. 넓고 푸른 들판과 사람보다 많은 가축들이 노니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진 것 같다. 대신 몽골이 스케일이 훨씬 컸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 짧은 비행시간에 잠이 충분하지 못했던 나는,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잠을 자서 체력을 충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에 타자마자 필요하다고 생각한 몇 가지 물건을 백팩에 옮겨 두고 판초를 눈가리개 삼아 잠을 청했다. 생각보다 푸르공 좌석이 푹신했고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나오는 길은 포장도 되어 있어서 자는데 불편함이 없었다(물론 이후에는 비포장도로에서도 잘 잤고 나는 어디서나 잘 자는 편이긴 하다).

 

🎒 푸르공에 탈 때 챙겨두면 좋은 것

판초, 휴대용 티슈, 물티슈, 자외선 차단 용품(선스틱, 선크림, 쿨토시 등), 헤어롤, 드라이 샴푸나 노세범 파우더 같은 앞머리 떡짐 방지 제품, 종이 비누 또는 손소독제, 가글, 선글라스, 보조배터리

 

아름다운 바깥 풍경과 그걸 무시하고 냅다 자는 나.

 

 

두어시간 쯤 가다가 화장실을 쓰거나 차를 마시라면서 휴게소 같은 곳에 처음으로 내려주셨다. 공항을 떠나와 처음 푸르공에서 내려 밟아보는 몽골의 땅. 흔한 몽골 초원의 풍경인데도 너무 아름다워서 눈도 다 못 뜬 채로 사진을 찍어댔다. 엽서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게 휴게소 앞마당 같은 위치였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건물 화장실은 꽤 깨끗했다. 몽골에 올 때 가장 걱정한 건 화장실 문제였는데,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어서 한 시름 놓았다. 대신 안에 휴지나 손비누는 없었다. 미리 휴지랑 종이 비누를 준비해 가져간 게 정말 다행스러웠다. 이 정도면 화장실은 잘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시간 여를 더 간 뒤(그래봐야 아침 7시 반 정도였음) 웬 노란 꽃밭 앞에 푸르공을 세워주셨다. 창 밖으로 드넓은 꽃밭을 보면서 감탄을 내뱉고 있었는데 곧이어 가이드님이 해주신 말씀, "여기서 아침 먹고 갈까요?" 와! 이것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꽃밭,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는 아침이라니.

 

노란 꽃들은 카놀라 꽃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카놀라유의 재료가 되는 꽃. 식용유 포장지에서만 보던 꽃을 실제로 보게 된 것도 신기하고, 이렇게 대규모로 키우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여행을 하다 보니 더 북쪽으로 가면 카놀라를 키우기 어려운지 이런 꽃밭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울란바토르 근방에서만 이런 꽃밭을 볼 수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날씨에서, 우리는 꽃밭 바로 앞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하게 되었다. 푸르공이 옆에 있고 파란 하늘과 노란 꽃반, 초록빛 초원을 눈앞에 두고. 해가 긴 여름의 몽골 덕에 이른 시간임에도 햇빛은 몹시 따뜻했고 아직 아침이라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해서 기분이 좋았다. 현실이라는 걸 아는데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가이드님이 빨간 체크무늬의 예쁜 돗자리를 가지고 오셔서 더욱 들떴다.

 

오늘 아침 메뉴는 무려 제육볶음 도시락이었다. 미역국이랑 김치, 오이 무침, 어묵 볶음에 계란 후라이까지 제대로 있는 한 끼. 한국에서도 이만큼 제대로 챙겨 먹는 날이 잘 없는데 첫 끼가 이 정도라니 정말 감동이었다. 양은 또 얼마나 많던지 긴 하루에 배가 많이 고팠는데도 도저히 깨끗이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몽골에서 걱정한 것 중에 다른 하나는 음식이었는데 첫 끼가 너무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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