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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6-3.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by 이냐니뇨 2022. 10. 9.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하산길은 출발 전에 만났던 커플과 함께 하기로 했다. 처음에 같이 길을 헤맸던 인도인 일행들은 어디쯤 왔는지, 정상에서 기다리며 찾아 봤지만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날이 개고 있었고 빙하가 녹은 물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길가에 쌓인 눈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해가 나니 훨씬 따뜻하기도 해서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섰다.

 

 

같이 길을 나선 커플은 사진에 진심인 친구들이었다. DSLR을 들고 온 것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트롤퉁가에서의 사진을 정말 훌륭하게 찍어 주었다. 게다가 내려가는 길에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자 신나게 셔터를 눌러 댔다. 덕분에 나도 이번 여행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실컷 건질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며 다리가 풀리던 나를 살뜰히 챙겨주기도 하고 간식도 이것저것 나눠주었다. 그 둘이 없었다면 무사히 끝내지 못했을 일정이었을 것 같다.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둘이랑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뒀어야 했는데 아쉽다.

 

 

 

내가 같이 산을 내려온 친구들은 '몰도바'에 사는 나탈리아와 줄리앙이었다. 여행하면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한국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는데(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보는 사람은 많았다), 나는 너무 낯선 나라라 처음에는 이름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나라였다. 나중에 찾아 보니 동유럽에 있는 작은 나라였고, 러시아에는 모르도바라는 도시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한다고 했다.

 

몰도바가 나라 이름이라는 것도 몰랐던 무지한 나와는 달리, 이 커플은 한국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노르웨이에서는 한국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런 신기한 우연이 또 있을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고 설렁탕도 먹을 줄 아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내가 가져 간 한국 과자도 나눠주고 레토르트 설렁탕도 있으니 한인마트에서 찾아 보라며 오뚜기 설렁탕 사진도 보내 주었다.

 

 

6년이나 만났다던 친구들인데 놀랍게도 서로 좋아하는 것이 몹시 느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사랑이 가득해서 그 모습이 정말 예쁘고 부러웠다. 인상 깊었던 건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했다는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부탁을 할 때는 "Would you mind?" 하면서 정중하게 말한다는 점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해서 그런 말을 썼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따뜻하게 말하는 게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말하는 법을 잘 모르던 나로서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문득 문득 반성하게 되었다.

 

 

많은 것을 얻은 22km 트롤퉁가 대장정이 끝이 났다. 나는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처럼 12~14시간까지 걸리지는 않았고, 1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처음 오를 때 길을 2번이나 잃어서 걱정했는데, 알맞은 시간에 산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아래에서는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 듯 맑고 따뜻한 날씨가 나를 맞아 주었다. 위에서 찾지 못했던 인도인 일행도 다시 만났다. 또다시 버스가 보이지 않아 오따 시내로 돌아갈 때도 택시를 타야 했다. 산에서 만난 일행들이 생긴 덕분에 걱정 없이 택시비를 나눠 내고 돌아왔다. 이제는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버스(저녁 8시 40분, NOK 324)를 타고 베르겐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이 여행에서 목표했던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코스 정복도 이로써 끝났다. 편하게 쉴 일정만 남았다.

 

 

가격 정보

  • 오따 시내 ~ 트롤퉁가 택시 NOK 400 (3~4인이 함께 타서 나눠 낼 수 있음)
  • 오따 ~ 베르겐 버스 NOK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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