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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6-1. 드디어 트롤의 혓바닥 위로 (1)

by 이냐니뇨 2022. 10. 3.

드디어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중 마지막 장소, 트롤퉁가만 남았다. 코스 입구부터 정상인 트롤퉁가까지의 왕복 거리는 총 22km 정도. 평탄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10~12시간의 시간이 걸리는, 3대 트레킹 중 가장 길고 힘든 코스이다. 어제 1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지만, 12시간 코스를 늦지 않게 마치고 쉬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나서야만 했다.

 

트롤의 혓바닥이라는 뜻의 트롤퉁가는 내가 노르웨이 여행을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구경만 하기 보다는 몸소 체험하는 진짜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사진이 바로 트롤퉁가의 사진이었던 것이다. 트롤퉁가 하나만 보고 결심했던 여행인 만큼 이 일정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컸다.

 

 

오따 시내에서 트롤퉁가로 가는 버스는 6시 반과 7시 반에 있다고 했다. 어차피 산에 오르느라 화장은 필요 없으니, 대충 씻고 부랴부랴 나가서 6시 반 셔틀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 버스가 7시가 다 되도록 오지를 않았다. 아마도 휴일이라 배차 시간이 달랐던 모양이다. 이른 아침이라 물어볼 데도 없고 해서 히치하이킹을 해보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우연히 택시 한 대가 잡혔을 뿐. 살인적인 노르웨이 물가를 알기에 택시는 선뜻 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데, 주변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과 4명이 함께 타면 인당 100크로네씩만 받겠다고 하시기에 그럼 괜찮겠따 싶어 얼른 잡아 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용으로 호루라기도 준비했고 먹을 것도 준비했지만, 워낙 길고 험한 코스라 혼자 가는 건 위험할 수 있었다. 나는 내려서 만난 사람들과 다짜고짜 같이 올라가자며 일행을 꾸렸다. 인도인 일행들과 유럽 커플 한 쌍, 그리고 나까지 8명 정도의 일행이 만들어졌고 드디어 트롤퉁가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트롤퉁가 하이킹 코스 안내 / 출처 : 짧게 짧게 세계여행(https://tripping.tistory.com/)

 

노르웨이의 트레킹 코스는 어딜 가나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안내판이나 인조 시설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길가의 돌에 "T"라는 글씨가 가끔 쓰여 있을 뿐이었다. 이 "T" 표시가 보이면 나는 맞게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반부터 우리 일행은 길을 잃었다. 분명 길을 잘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표시가 사라져 있었다.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단체로 길을 잃다니! 우리는 40여 분을 종이 지도와 제대로 잡히지 않는 GPS 신호를 번갈아 보며 씨름해야 했고, 트레킹 초반부터 땀이 뻘뻘 났다.

 

 

 

겨우 길을 찾아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설원이 펼쳐졌다. 구름이 잔뜩 끼어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눈밭인지 언뜻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눈과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산 아래쪽은 날씨가 괜찮았는데, 산의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러울 수 있는지 그땐 알지 못했다. 6월이면 여름이 시작되어 비로소 트레킹이 가능해진다고 하기에 푸릇한 산길을 기대했는데, 이렇게 눈이 가득 쌓여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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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나는 하나도 춥지 않았다. 험한 길을 몇 키로나 걷고 있으니 춥기는 커녕 땀이 뻘뻘 났다. 눈 앞에 가득 쌓인 눈을 바라 보면서 얇은 티 하나만 입고 더위를 느끼며 산길을 걷고 있는 게 꿈만 같았다. 현실감을 느끼려고 깨끗한 눈 밭 한 쪽에서 눈을 한 움큼 집어 맛보았다. 놀라운 만큼 깨끗한 맛이었다(노르웨이는 자연이 너무 깨끗해서 계곡 물이나 눈을 먹어도 된다고 한다).

 

다만 힘들었던 것은 길이 아주 좁은데다가 어디가 크레바스(빙하의 표면에 생긴 깊게 갈라진 틈)일 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발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잠시 쉬려고 옆으로 비켜설 때는 발을 디딜 때마다 스틱으로 두드려 보고 가며 긴장해야 했다. 그 와중에 여름이 다가오느라 눈이 녹고 있어 땅은 질척이고 눈이 녹아 물이 되어 흘렀다. 노르웨이 트레킹을 생각하고 있따면 꼭 접지력이 좋고 방수기능을 갖춘 등산화를 신고 가길 바란다. 일행이었던 커플은 런닝화를 신고 오는 바람에 신발이 젖어 고생을 많이 했다. 나중에는 젖어가는 발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발에 비닐을 씌운 뒤에 신발을 신고 걸었다.

 

 

방수가 되는 신발을 신었어도 신발에 닿는 물의 차가운 감촉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몸은 계속 움직이느라 너무 더운데 발은 꽁꽁 어는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두꺼운 신발이나 양말을 신고 오는 건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중턱까지 왔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가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니 일행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먼 길을 속도를 맞춰 걷기란(특히 처음 보는 사람들과)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길은 하나 뿐이니 그 때부터는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너무 덥고 힘들어지니 이 길 위에 나만 있는 것 같았다. 온 몸에서 생각이 빠져 나가고 나는 정상을 오르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순간이었다. 풍경을 찍는 것도 잊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트롤퉁가 트레킹 준비물

  • 접지력 좋고 방수 되는 등산화(경등산화도 가능, 필수)
  • 등산자켓
  • 따뜻한 옷(경량패딩이나 조끼, 후리스 같은 것)
  • 등산스틱(있으면 좋음)
  • 점심 도시락
  • 중간에 먹을 간식
  • 따뜻한 물(따뜻한 물 있으면 정말 좋음, 찬 물은 가져가도 되고 계곡물을 떠 마셔도 된다.)
  • 스파츠(있으면 좋음)
  • 선글라스(있으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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