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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5-1. 궂은 날씨의 프레이케스톨렌, 좌충우돌 정복기 (1)

by 이냐니뇨 2017. 10. 23.

쉐락볼튼을 정복하고 왔다는 뿌듯함도 잠시, 잘 자고 일어나보니 팔과 다리가 쑤셔왔다. 노르웨이 여행을 결심하기 전엔 등산이나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팔 힘이 없기로 알아주는 나인데,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쇠사슬을 붙잡은 채 요령없이 산을 올랐으니 그럴만도 했다. 스트레칭을 좀 배워가면 좋았을걸.

 

심지어 밖을 보니 오늘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날 날씨도 비가 오다 그치고 맑아진 것이라 기대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온몸이 쑤시는데 비까지 오니 좀 자신이 없어졌다. 곧 22km 코스의 트롤퉁가도 가야 하는데, 그냥 스타방에르에서 쉬면서 컨디션 조절을 해야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나의 목표는 그 무엇보다 노르웨이 3대 트레킹을 완주하고 오는 것!

딱 한 번 트레킹을 하고 힘들다고 포기하기에는 아쉽다는 마음이 걱정을 이겼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스타방에르 시내가 생각보다 작아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던 것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고.

 

 

 

마음을 다잡은 나는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뒤에 여유 있게 페리를 타러 나갔다. 어제 만났던 동행 언니가 구글맵에서 나오는 페리 터미널이 아니고 다른 곳이라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미리 경고해준 터라, 나가면서 프론트에 물어 길도 체크해두고 표시를 해준 지도도 받아서 든든하게 길을 나섰다.

 

나오고 보니 페리 터미널로 항하는 길은 스타방에르 신시가지 쪽이었는데 그 풍경도 너무 아기자기해서 신나게 구경하며 걸었다. 흐리긴 했지만 비도 점점 잦아들어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지.

 

 

신시가지를 지나니 물가가 나왔고, 배들이 잔뜩 서있었다. 쉽게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으나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늘어선 배들 사이를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타우(Tau)로 가는 배*는 보이지 않았고, 주변에 티켓팅하는 사무실이나 관리사무소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 스타방에르에서 프레이케스톨렌을 가려면, 페리로 타우까지 간 다음 그 곳에서 버스를 타고 프레이케스톨렌으로 가야 한다.

 

커다란 물가를 한바퀴 다 돌아본 것 같은데도 여전히 타우행 표지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는데, 비 오는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지나가지 않아서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다. 오늘 오후에 오따(Otta)*로 가는 버스와 숙소를 이미 예약해두었기 때문에 일정을 미루기는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 트롤퉁가 근처의 도시. 여기에서 하루 묵고 버스를 타고 트롤퉁가까지 갈 계획이었다.

 

 

페리 시간까지 이제 남은 시간은 15분.

 

그때였다. 저 멀리에 청소부 한 분이 일을 시작한 것이 보였다. 다른 방법이 없던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분께 달려갔고, 이미 이 곳 청소가 끝나서 카트에 올라타 다음 장소로 가려던 걸 팔까지 흔들어가며 길을 막아 서서 길을 물었다.

알고 보니 장소는 제대로 찾아갔지만 안쪽으로 1키로 정도를 더 가야만 타우로 가는 페리 터미널이 있다는 것이다.

 

일하다 말고 친절히 구글맵까지 켜서 길을 알려주셨지만, 10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그 곳에 도착하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도 모르는데 더 일찍 나서지 않은 내 탓이니, 우선 알았다고 고맙다고 하고 길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내 표정이 영 좋지 않았는지 몇시 배를 타려던거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7시 30분....."

 

내 대답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그 분은 "안되겠다, 태워다 줄게." 하는 것이었다.

 

청소 카트는 몹시 작았다. 작은 골프 카트같이 생겼는데, 청소도구가 잔뜩 쌓여 있고 맨 앞에 의자가 있는 구조였다. 1인용 차 같았는데, 나의 구원자는 금세 청소도구를 살짝 밀어내어 틈을 만들어 주었다. 카트 조수석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페리 터미널로 향하고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내게 다급하게 길을 묻는 낯선 여행자를 보면, 이 정도의 호의를 베풀어줄 수 있을까?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선뜻 내어줄 수 있을까?

 

 

청소용 카트라 그리 빠르지는 않아 페리를 타는 곳까지 5분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걸어서는 절대 도착하지 못했을 시간에 페리 터미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눈 앞에서는 사람들이 타우행 페리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의 천사에게 날 구해주었다고,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서 페리에 뛰어 올라탔다. 아무리 고마움을 표현해도 다 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없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야 했다. 그는 행운을 빌어 주었고, 덕분에 한껏 따뜻해진 마음을 안고 출발할 수 있었다.

 

 

여행하면서 만난 노르웨이 사람들은 사실 모두 여유도 느껴지고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길을 알려주는 건 당연하고 여행을 위해 행운을 빌어주기도 하고, 사진 찍는 나를 위해 버스 속도를 일부러 낮춰 주는 버스 기사님도 만났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이 청소부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전히 그의 모습과 작은 카트의 모습, 느린 카트를 타며 늦을까 걱정하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통성명이라도 할걸 그랬나 싶어져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음으로나마 그 이름을 기억하며 몇 번이고 고마워할 수 있었을텐데.

 

 

노르웨이는 진짜 천국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착한지 모르겠다. (중략)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1시간 반을 비 오는 스타방에르에서 헤맸을 것이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고야 내렸다. 어디에서도 해보지 못했을 청소 카트 탑승. 낯선 사람을 그렇게 도와주다니 정말 천사가 분명하다.

- 6월 4일의 일기 중

 

 

이렇게 탄 페리는 내가 노르웨이에서 처음 타보는 배였다.

울릉도 가는 배나, 홍콩에서 마카오로 향하는 배처럼 좌석이 빽빽하게 놓인 모습을 생각했는데 내부가 좀더 카페같이 아늑하고 널찍해서 놀랐다. 좌석도 여유가 많았고, 티켓에 좌석 번호가 쓰여있지도 않았다. 아무데나 편히 앉아서 가면 되는 시스템이라 페리보다는 유람선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아기자기한 북유럽의 풍경도 그 기분에 한 몫 했고.

 

 

잘 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페리의 카드기가 먹통이 되는 일이 있었다. 노르웨이의 페리는 탑승 후 자리에 우선 앉아잇다가 승선한 직원이 오면 결제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카드기가 먹통이 되어버린 것.

큰 돈은 아니었지만, 노르웨이는 카드기가 잘 되어있다고 하기에 현금을 얼마 뽑아가지 않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는 지 카드기 사태에 한참을 배의 사무실 앞에 줄을 서서 티켓을 사야 했다. 이제서야 비로소 페리 탑승 과정이 끝났다.

 

아직 본격적인 일정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바깥에는 그칠 줄 알았던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페리는 금방 타우에 도착했다. 내리고 나면 굳이 찾을 것도 없이 바로 앞에 커다란 버스들이 서있다. 버스 표는 사전에 예약해서 사도 되지만, 여기에서 시간이 맞는 버스를 바로 골라 타고 티켓을 끊어도 충분하다.

 

알아 보니 Tide사의 버스가 좀더 배차간격이 좁다고 하기에, 나는 흰 버스에 올라타 왕복 티켓을 바로 결제했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니 금방 프레이케스톨렌(Preikestolen) 주차장에 도착했다.

 

 

 

 

프레이케스톨렌 트레킹 준비물

  • 방수 되는 등산화(경등산화도 가능, 필수)
  • 등산자켓
  • 등산스틱(있으면 좋음)
  • 마실 물과 간단한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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