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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4-2. 고소공포증 여행자의 계란바위 정복기(2)

by 이냐니뇨 2017. 9. 3.

얼마나 갔을까?

급격한 경사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여행자들의 후기를 보면, 초반 급 경사로만 바짝 힘들고 그 길을 견디고 나면 수월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 했지만 초보 하이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겨우 구한 동행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눈 앞에 드넓은 돌산이 펼쳐져 있는데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틈은 없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ravelhackergirl.com/kjerag-hike/)

 

 

 

손을 놓고 쉬고 싶었지만 아침에 비가 온 터라 바위가 미끄러웠다. 등산화를 신고도 발이 미끄러지는 걸 보니 쉬는건 이미 글렀다.

백만번쯤 포기할지 말지를 고민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내려가 보아야 당장 돌아갈 버스도 없다.

 

나는 성격 급한 동행과 페이스를 맞추는 것은 포기하고 나의 페이스대로 길을 가기로 했다.

트래킹 첫 도전부터 무리하다 다치는 일이 있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뒤에 오는 사람들이 독촉한다거나 앞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멈춰서는 일은 없어 내 페이스를 잃지 않고 길을 오를 수 있었다.

 

 

영원같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죽을 것 같던 오르막길도 주춤해졌다.

아기자기한 개울물과 돌다리를 보는 순간 마음이 놓이며 뿌듯함이 밀려왔다.

동행은 앞에서 날 기다려주고 있었고, 평지가 나타났으니 함께 사진을 찍으며 속도를 맞추어 걸을 수 있었다.

고맙게도 늦어진 나를 원망하지 않고 잘 올라온다며 격려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잠시 목을 축이고 또다시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는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고, 내 체력은 예상보다 더 안좋았으므로 스타방에르로 돌아가는 버스를 놓치게 될까봐 마음이 급해졌다.

동행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거의 대화도 하지 않고, 사진도 거의 찍지 않고 열심히 걸어갔다.

 

 

처음으로 올라보는 노르웨이의 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돌산이라 조금 무뚝뚝한 느낌이긴 해도 풀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포근해 보였고,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돌들은 동글동글 귀여웠다.

산이 정말 드넓고 웅장해서 더욱 그 풍경에 압도되었다.

 

 

 

확실히 처음 힘겹게 올랐던 오르막길에 비하면 수월한 길이 이어졌다.

계단이나 돌 같은 것으로 길을 닦아놓은 한국의 산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여행자들이 일만 잃지 않도록 돌 위에 빨간 글씨로 'T'만 적어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또 함부로 하기 어렵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곧 나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새하얀 눈밭.

깨끗하고 눈이 부신 눈밭을 지나고 나면 곧 쉐락볼튼이 나타난다고 했으니 이 길도 얼마 남지 않았다.

도착지에 다다르니 흐리기만 하던 하늘도 점점 개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재촉했다.

어쩌면 이 곳은 그 유명한 계란바위에 가까워져 가는데도 표지판 하나 없을까, 신기해 하면서.

 

 

계란바위라고 불리는 쉐락볼튼은 산에 있는 절벽 사이에 낀 바위라 높이 솟아있는 것이 아니라 지대보다 아래쪽에 있다.

그래서 정상에 다다라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T' 자와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고 눈치껏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많은 관광객이 길을 잃었다.

마지막까지 정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이 곳.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쉐락볼튼에 도착했다!

맑게 개인 날씨 덕분에 더욱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서 뿌듯함을 한껏 누렸다.

 

사실 고소공포증이 심해 계란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는 위험은 감수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고생을 하고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 없게 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의 인증샷을 찍기에 이르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고 있으려니 앞에 일행과 함께 온 가이드가 안전하게 바위에 오르는 법을 설명해준다.

부들부들 떨면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지만 나의 첫 도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고생한 기억은 눈녹듯이 사라지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눈 앞에 두고, 나는 동행과 함께 가져온 샌드위치와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나마 감상에 젖었다.

 

이 순간 다른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풍경을 눈에 담기에도 바빠 사진도 그리 많이 찍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이 나라 노르웨이를, 그리고 트래킹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강력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쉐락볼튼 트레킹 준비물

  • 접지력 좋고 방수 되는 등산화(경등산화도 가능, 필수)
  • 등산장갑
  • 등산자켓
  • 가벼운 점심거리
  • 마실 물
  • 등산스틱은 가져가지 않는게 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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