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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4-1. 고소공포증 여행자의 계란바위 정복기(1)

by 이냐니뇨 2017. 8. 13.

전날 저녁, 스타방에르에 도착한 나는 잔뜩 떨리는 마음으로 짐을 풀었다.

 

등산 장갑이나 등산 스틱, 등산화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가져본 것들이었다.

드디어 이것들을 써볼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했지만 또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등산을 해본 적이 없으니 가방을 어떻게 싸야 할 지도 감이 잘 오지 않아 몇 번이고 가방을 쌌다 풀었다 했다.

 

 

 

날이 밝은 아침.

날이 무척 밝아 기대했는데 그건 해가 일찍 떴기 때문일 뿐이었고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보슬비라고 하기에는 빗줄기가 굵었고 그마저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궂은 날씨에도 쉐락볼튼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잔뜩 있었다.

전날에 버스 예약을 해도 될 정도로 자리가 여유로울거라고 하기에 비오는 초여름엔 자리가 남아돌 줄 알았더니.

한 일행은 예약을 하지 않아서 버스에 오르지 못했는데, 그게 한국인들이라 일행을 만들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한국사람이세요?" 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혼자 앉아있는 한국인 여자분이었다.

나는 금세 동행을 맺고 붐비는 버스 안에서 다른 일행에 자리를 양보해주며 그 언니와 함께 앉아 창 밖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에 도란도란 감탄을 내뱉었다.

 

 

스타방에르 버스터미널에서 쉐락볼튼까지는 3시간~3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시내를 벗어나면 바로 노르웨이 특유의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영화 '겨울왕국(Frozen)'에서 당장 튀어나온 것 같은 산이 끊임없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었다.

노르웨이의 산들은 울창한 숲보다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돌들이 금방이라도 트롤로 변신해 춤을 출 것만 같다.

 

나는 여기저기 이동시간이 많은 여행 중에 읽기 위해 핸드폰에 이북이나 영화 등을 여러 개 담아왔는데 풍경에 눈을 빼앗겨서 그런 것에 눈을 돌릴 겨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길은 좁아지고 지대는 높아진다.

옆에 보이는 산의 바위도 점점 거칠고 거대해지고 가까워진다.

어떤 곳은 차가 한 대 밖에 지나갈 수 없는 폭이라, 맞은 편 차가 다 지나가고 나면 그 길로 들어서야 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나라라면 어떻게든 편하게 길을 지나가기 위해 산을 깎아냈을텐데 이 곳은 불편을 감수하는 편을 택한 것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차 안에서 졸기도 했다가 다시 깨어 풍경을 보기도 하다가 언니랑 이야기도 하다 어느덧 쉐락볼튼으로 향하는 트래킹 코스의 출발지에 다다랐다.

다행히 비는 그친듯 했지만 날이 흐리고 안개가 잔뜩 끼어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고, 도착시간이 조금 지연되어 마음이 조급했다.

 

동행이 된 D 언니는 더욱 조급해하는 것 같았다.

전날 프레이케스톨렌에 올라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못본데다 시간이 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고 하니 그 마음이 이해도 되었다.

우린 주변의 아름다운 광경은 나중으로 미루고 서둘러 계란바위 쉐락볼튼으로 향했다.

 

 

 

 

 

 

트래킹 코스는 차창 밖으로 보았던 풍경 그대로였다.

그 풍경 안에 들어가 발을 디디고 공기를 느끼고 바위를 만져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결국 나는 이 여행만을 위해 몇 달이나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길러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행복감도 잠시, 쉐락볼튼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코스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급격한 경사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급한 오르막길에 비까지 온 뒤라, 새로 산 등산화조차 미끄러졌고 바위에 위태롭게 꽂혀있는 쇠사슬 한 줄에 의지해 길을 올라야했다.

여행을 오기 전 꼭 필요할까 고민을 하다 급하게 마트에서 집어온 등산 장갑이 빛을 발했다.

살림을 하면서는 엄마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등산을 하면서는 선배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짧을 줄 알았던 가파른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연약한 척을 하려는게 아니라, 나는 정말 팔 힘이 없기로 유명하다.

이따금 팔 운동을 할때면 아령도 1kg짜리로 하고 내 손으로 물을 들고 올 수가 없어 물은 택배로 시켜먹으며, 건강검진을 하면 상체 근육이 부족하다고 나온다.

그런 내가 처음 오르는 산에서 이런 길을 만나다니!

 

동행 언니는 잘만 오르는데 나는 도통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급기야는 뭣도 모르고 등산을 하겠다고 나선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고, 지금이라도 내려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런지 심각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동행 언니가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고 괜히 짐이 될 것 같아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이 산을 정말 다 오를 수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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