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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2-2. 첫 번째 도시 오슬로에서의 첫 밤

by 이냐니뇨 2017. 7. 23.

오슬로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푸근함'이었다.

처음 겪는 북유럽이라 희고 커다란 북유럽 사람들에 대해 차갑고 냉정할거란 선입견이 좀 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여유가 넘치고 친절했다.

 

테러를 겪은 후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진 영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노르웨이 역시 다문화 수용에 대한 반항심이 일으킨 총기 테러가 있었던 나라임에도 여전히 외국인에게 관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입국 심사가 특별한 질문도 하지 않고 짧게 끝났을 뿐 아니라 여행을 잘 하라며 웃으며 인사해주는 공항 직원을 보니 여독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유를 알 길이 없이 내 핸드폰이 먹통이 된 것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유심칩을 구입해서 갔는데, 아무런 신호도 잡지 못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처음 가는 도시라 숙소 가는 길을 알 턱이 없는데, 인터넷이 먹통이니 어쩔 줄을 몰랐다.

다행히 공항에서 시내 가는 법 정도는 미리 알아보았기 때문에 무사히 오슬로 역까지는 갈 수 있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역에서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0시가 넘어가는 오슬로의 날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쌀쌀했고, 복지국가답게 모든 인포메이션 센터는 문이 닫혀 있었다.

 

사실 길을 잃는 것은 나의 여행에서 매번 있는 일이기에 처음에는 담담하게 역을 둘러보고 순찰하고 있는 경찰들에게 출구를 물어보며 나갔다.

나가보니 블로그를 통해 몇 번 보았던 익숙한 육교와 호텔의 모습이 보이기에 일단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이 될 생각을 안했고, 물어볼만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때였다.

 

"Where do you find?"

 

한 남자분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다짜고짜 숙소 이름과 찾아놓았던 주소를 보여주었더니, 구글맵으로 검색을 해주고 계단에서는 내 캐리어를 들어주며 길을 함께 가주었다.

대화를 해보니 심지어는 한국에도 와본 적이 있어 한국말로 인삿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 더욱 반가워졌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사람도 출장 와있는 미국인이라 길을 잘 몰랐다.

그래도 친절히 나를 가는 길에 있던 호텔 카운터까지 인계해주고 행운을 빌어준 좋은 사람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호텔 카운터에서 관광 지도까지 얻어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예약한 Anker Hostel은 지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역과 가까운 곳이었고, 번화가와 약간은 거리가 있어 조용한 곳이었다.

연식은 좀 되어보이지만 시설도 깔끔하고 쾌적한데다 아주 가까운 곳에 마트가 2개나 있어 마음에 쏙 들었다.

 

길을 찾느라 긴장했던 탓인지 조금 출출해진 나는 야식과 내일 아침거리를 사기 위해 근처 마트로 갔다.

이 기분을 풀기 위해서는 맥주 한 잔이 시급했던 터였다.

 

비싼 물가에 놀라면서도 잊지 않고 맥주 한 병을 바구니에 담아 왔는데, 계산을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 신분증 가져왔어!"를 애타게 외쳐보아도 계산을 거부했고 알고보니 노르웨이 마트에선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6시 이후에는 술을 팔지 않는단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속상하지만 다른 수가 없어 다른 것들만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갔더니 로비에 사람들이 딱히 어울려 놀고 있지는 않았고, 바에는 맥주가 하길래 직원에게 여기 맥주 하나 달라고 부탁해 하나를 받아들었다.

그 직원은 여기는 너무 춥고 멀고 또 마트에서 마트도 팔지 않는다는 나의 투정을 웃으며 받아주었다.

 

게다가 알고보니 필리핀 출신이고 K-Pop을 즐겨 듣는다며 한국은 산다라박의 나라이지 않냐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상상치 못한 곳에서 한류의 열기를 느끼고 보니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밖에 나오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더니.

 

 

덕분에 많이 풀린 마음으로 방에서 맥주 한 잔을 놓고 내일의 일정을 세우며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듯 했다.

 

 

 

 

 

 

여행은 역시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던가.

씻고 여유를 만끽하며 여행 일정을 짜고 있는데, 화재경보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연기는 나지 않는데 이걸 어쩌나 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유럽사람들, 미국사람들은 차분하고 신속하게 대피를 하고 있었다.

나처럼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한국인과 중국인 뿐인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에 지갑만 챙겨들고 층계를 내려갔다.

 

다행히도 별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과 내가 그동안 화재대피훈련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고단했던 하루.

내일은 오늘보다 낫길 바라며 잠을 청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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