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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4-3. 끝까지 쉽지 않던 계란바위, 그 끝의 개운함

by 이냐니뇨 2017. 9. 21.

이제 날씨는 완벽하게 개었고 빙하에서 내려온 파아란 물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계란바위를 한없이 바라보며 든든히 배까지 채우고 앉아 있으려니, 산의 높이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으려니 너무 추웠던 것.

 

 

 

이 산은 끝까지 내게 여유로움을 쉬이 내주지 않는다.

산행 초보자인 나와 동행은 모두 제대로 된 준비물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장비는 뭐가 필요한지 찾아보면 나오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하우가 없었으므로 산 위가 얼마나 추운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 더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지마느, 너무 추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던 우리는 결국 서둘러 하산을 하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날이 개어 풍경도 훨씬 아름다웠다.

언제까지 올라가야 할지 막막하던 올라가는 길에 비하면 마음도 훨씬 편했고, 그새 오르내리는 데에 요령이 생겨 마음 편히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 서둘러 올라오길 잘했다고 감탄하며, 동행과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사실 올라가는 길에 궂은 날씨 때문에 많이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풍경이 아닌, 회색빛 뿌연 하늘만 보이는 탓에 꽤나 속상했다.

 

그런데 막상 내려오는 길에 날이 개고 나니 실망하기보다 서둘러 올라왔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속상해하고 주저앉아있을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면 즐길 수 있는 시간마저 부족해지게 되니까.

 

역시 여행을 하다 보면 잊고 지냈던 단순한 삶의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즐거운 하산 길을 마친 우리는 쉐락볼튼 주차장 입구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꽤나 서둘렀더니 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 1시간 가까이 남았기 때문이다.

 

아직 하산한 사람이 많지 않아 자리가 넉넉한 매점 창가 테이블에 앉아, 등산의 피곤함을 날려주는 생맥주를 한 잔 마셨다.

화장실이 없는 6시간 코스의 산 위에서 물도 맘껏 먹지 못한 채 내려온 후 마시는 맥주 맛이란 말 안해도.

이 맛에 어르신들이 등산 후 그렇게 막걸리들을 드시나보다.

 

 

 

 

 

 

다시 스타방에르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우리는 말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스타방에르 시내를 함께 돌아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처음 해보는 긴 등산에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은 감기고 있었다.

덕분에 저녁조차 제대로 챙겨먹을 생각을 하기 어려워, 숙소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챙겨 온 라면을 먹은 후 기절하고 말았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긴 했지만 정말 기분좋은 노곤함이었다.

아무래도 트래킹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조차도 이렇게 힘들었으면서 한국에서 다음 트래킹 장소를 물색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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