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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몽골몽골, 우리의 여름

에필로그. 몽골 여행 기념 1주년, 한국에서 몽골 찾기

by 이냐니뇨 2024. 8. 25.

몽골에 다녀온 지 1년 하고도 거의 1달이 지났다. 여전히 몽골은 왠지 그립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나와 친구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문화나 비슷한 브랜드, 음식 같은 것들을 찾기가 어려워서 더 그런 것 같다.

 

어느 날엔가 문득 누워서 뒹굴거리는데 쵸이왕(몽골의 볶음면)의 쫀득한 면과 담백한 그 맛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예전에 여행 준비할 때 몽골 문화원에서 원데이 쿠킹 클래스 같은 걸 해주시는 걸 발견했던 게 기억나서, 만들어서라도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해리포터에서도 '필요의 방'이라는 곳이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해리포터가 먼저 튀어나오는 해덕). 역시 찾으니까 뭐라도 나온다. 바로 동대문에 있는 중앙아시아거리. 이 거리의 존재도 처음 알았는데, 우즈베키스탄, 몽골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주해서 일하시는 분들이 종종 찾는 모양이다. 바로 옆에는 러시아 거리도 있는데, 이 골목에 있는 러시아 케이크 카페는 방송도 타고 꽤 유명한 것 같았다.

 

 

이 발견을 널리널리 알려야지. 마찬가지로 몽골을 그리워하는 나의 여행메이트들에게 이 골목의 존재를 전한다. 그리고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올해 8월. 한국에서 내 돈 주고 몽골 음식을 먹기 위한 원정을 떠났다.

 

 

 

내가 찾은 식당은 우거데칸 몽골 레스토랑. 동대문역 바로 앞에 있다. 몇 안 되는 후기를 보니 가격 빼고는 한국의 맛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고, 가게도 꽤 깔끔해 보이고 해서 골랐다. 혹시라도 저녁시간에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싶어(괜한 걱정이었다는 게 곧 밝혀진다) 예약을 해보고 싶었는데, 네이버나 캐치테이블 예약은 당연히 없었고 전화를 걸어봤으나 "여보세요?" 하자마자 끊어 버리셨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시는 것 같다. 언어에도 타협이 없는 식당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찾은 식당. 생각보다 깨끗한 외관에 조금 어색한 마음이 들었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꽤나 낡았다. 너무 깨끗하면 나에겐 몽골이 아니다.

 

 

 

 

그리고 환호를 부르게하는 인테리어. 짝이 안 맞는 식탁과 의자들, 그리고 왠지 식당보단 카페 같은 비주얼. TV에 나오고 있는 몽골 예능과 테이블 옆에 놓인 게르 인형까지. 감동 그 자체. 보자마자 육성으로 "와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센베노!

 

 

 

 

 

메뉴판을 샅샅이 훑어보는데 지금은 패드로 주문하게 되어 있어 참고용으로 다른 곳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첨부한다(가격 동일, 24년 8월 기준). 과한 가격은 아니지만 볶음밥이나 만둣국 같은 게 12,000원 이상인 걸 보고 조금 놀랐다. 몽골에서처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가격이 좀 배신감이 느껴져 참았다.

 

몽골튀김만두라고 되어 있는 반가운 호쇼르는 1개 낱개 가격이고(메뉴판 사진에는 3개였는데), 내가 그리워하던 쵸이왕은 몽골볶음면이다. 허르헉은 아마 예약을 해야 하는 것 같았다. 전통 우유차는 한 주전자에 5,000원인데 잔 당 1,000원에 먹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세 명이라 잔으로 시켰다.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kimdsjh16/223343117338

 

 

몽골에서만 먹어 본, 세상 어디에도 없을 맛의 초코와인이 있을까 싶어 와인은 뭔지 손짓발짓으로 겨우 여쭤봤는데 내가 간 날은 와인이 없다고 하셨다. 아쉬운 대로 더위를 달래기 위해 생맥주를 시키자 했더니 생맥주도 없다고 하신다. 이게 몽골이지. 메뉴판에 있는 모든 메뉴가 준비된 것은 몽골 감성이 아니다.

 

오랜만에 맛 보는 우유차는 약간 사골곰탕을 떠올리게 하는 짭짤한 그 맛이었다. 대신 몽골에서 내가 먹었던 것보다는 좀 더 묽고 덜 고소한 느낌. 아마 탈지분유를 쓰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한국우유 자체가 몽골의 우유나 말젖과는 풍미가 많이 다르니 그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찻잎을 띄운 수테차를 더 좋아했는데, 그건 없는 모양이다. 다음엔 이 골목에서 다른 몽골식당을 가봐야겠다. 

 

 

한여름에 마시는 따듯한 우유차.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뉴 등장. 우리는 볶음면, 튀김만두, 고기만둣국, 양갈비를 시켰다. 볶음면이랑 양갈비는 정말 몽골 느낌 많이 나는 맛이라 대만족이었는데, 특히 양갈비가 정말 부드럽고 담백하고 맛있었다. 게다가 23,000원에 양도 적지 않아 가장 만족스러웠다.

 

호쇼르를 가장 기대했는데 덜 바삭하고 속이 적었다. 게다가 속에 고기가 아니라 채소가 같이 들어 있어서 내가 몽골에서 먹었던 그 느낌은 아니었다. 몽골은 좀더 단백질 그 자체였는데. 쵸이왕은 아는 그 맛! 쫀득한 생면과 담백한 맛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만둣국은 아주 맛있었는데 고기 냄새가 하나도 안 났지만 몽골 느낌이 나는 신기한 음식이었다. 한 입마다 우리를 몽골의 어느 곳으로 데려다주던 신기한 음식들. 우린 너무 행복했다. 그릇이 짝이 안 맞는 것도 역시 몽골이었다.

 

 

양갈비 구이와 만둣국.
쵸이왕과 호쇼르.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몽골 보드카. 분명 냉장고에 에덴과 소욤보가 있는 걸 봤는데, 어떤 걸 먹겠냐고 물어보진 않으셨다. 아마 에덴으로 주셨겠지. 소욤보가 좀더 비싸니까. 할 수 있는 의사소통은 "바야를라(감사합니다)"를 외치는 것뿐.

 

보드카는 9,000원에 샷 한 잔이라 한국적인 가격이다 하면서 주문했는데. 세상에. 우리는 나온 보드카를 보고 경악했다. 맥주잔에 가득 담아주신 것이다. 아니, 사장님. 보드카를 소맥처럼 주시면 어떡해요? 가볍게 한 잔 먹으려던 게 챌린지로 변해버린 저녁 시간. 그래도 이것도 굉장히 몽골 같다고 좋아하며 행복했던 우리였다.

 

 

너무 놀라워서 사진을 2장이나 남긴 몽골 보드카.

 

 

우리의 웃음 버튼 몽골. 중앙아시아 거리의 매력을 한껏 느끼며 또 한 번 추억을 만들었다. 다음에는 이 길의 다른 식당도 가봐야지. 몽골 기념일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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