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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여행인/어바웃 섬띵

[제주도 생일 여행] 3-2. 가파도로 갑니다(1)

by 이냐니뇨 2024. 7. 20.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부분은 바로 가파도로 가는 여행이었다. 5월의 가파도가 얼마나 예쁠지 기대가 됐으니까. 아쉽게도 5월 말이라 청보리를 기대할 순 없었지만 말로만 듣던 보리 섬을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제주도도 멋진 섬이지만 몇 년 전에 비양도에 가보았던 기억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주변 섬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가파도로 가는 배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출발한다. '가보고싶은섬' 앱에서 사전에 승선권 예매가 가능하고, 항구에 직접 가서 현장 구매를 할 수도 있다(앱 예매 기준 왕복 15,500원). 항구만 헷갈리지 않게 주의할 것. 나는 여행 출발 전날 갑자기 떠올려서 예매를 했는데, 청보리 축제 기간이 지났기 때문인 지 자리는 넉넉하게 있었다. 앱에서 예매할 땐 가는 배편과 돌아오는 배편이 약 2~3시간 간격으로 고정되어 있는 듯했다. 출발하는 시간에 따라 가파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다르니 잘 보고 예매할 것.

 

 

천천히 밥을 먹고 항구에 갔다. 예매 안내 문자에서는 꼭 40분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협박을 해댔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안내받은 시간에 맞춰 미리 가서 발권을 하려고 했더니 일찍 왔으니 앞 배로 바꾸겠냐고 하신다. 30분 넘는 애매한 시간을 기다리면서 읽으려고 책도 가져왔는데 머쓱할 지경. 하여튼 직원 분의 센스에 감사했다(사람이 없어서 가능했던 일, 수수료도 없었음, 럭키!). 현장에서 시간을 바꾸니 돌아오는 배편은 그대로 두어도 된다고 하셨는데 난 뭐에 홀렸는지 그냥 같이 바로 앞 배로 당겨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10분 후에 운진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게 되었고 꽤나 정신 없이 승선하게 됐다. 어차피 운진항에서 가파도까지는 15분 정도가 걸리는 짧은 탑승 시간이지만, 만반의 준비를 위해 짐도 체크하고 화장실도 들렀다가 부랴부랴 배를 타러 갔다.

 

배 타는 곳은 매표서 바로 옆 출구로 나가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너가면 바로 나타난다. 아담한 출입구와 알록달록한 배를 보니 마치 소풍을 떠나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동했다. 일기예보를 보고 혹시 배가 안 뜰까 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파랗고 맑은 하늘이 날 반겨주었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서도 떨림이 느껴져 마음이 함께 공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파도로 가는 배는 제주도에서 가파도와 마라도로 정기 운항하는 작은 배인데, 따로 좌석이 정해져있지도 않고 등급도 없다. 1층, 2층 모두 자유롭게 앉으면 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을 때 좋은 자리에 앉고 싶다면 일찍 가서 줄을 서는 게 좋겠다. 하지만 바깥에 대단한 풍경이 펼쳐진다거나 탑승 시간이 길지도 않으니 개인적으로는 자리 눈치싸움도, 멀미약도 필요 없어 보인다.

 

 

가파도 여객선 내부의 모습.

 

 

곧 도착한 가파도. 제주도 본섬과는 확연히 다른 아기자기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가파도는 작은 섬이라 우도처럼 외부인은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없는데, 그래서 내리자 마자 자전거 대여소가 있고 아주 작은, 공공 차량이나 주민을 위한 주차장이 보였다. 하지만 꼭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만큼 섬이 작다.

 

내가 온 길을 돌아 보니 방파제 너머 저 멀리에 한라산이 보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안개가 끼어 또렷하진 않았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어제 내가 올랐던 그 산.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산의 모습을, 그 아름다운 풍경을 한참 서서 감상했다. 나에겐 이 풍경만으로도 가파도에 온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어디에 가나 첫 인상이 가장 강렬하고 감동적인 것 같다. 여기에서도 이곳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은 굳이 보리밭을 보지 않아도 아주 아름다웠다. 놀랍게도 상점도 많지 않고, 아예 구조물 자체가 많지 않아 시야를 방해하는 거라곤 지나가는 사람들 밖에 없는 평화로운 풍경이 참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모두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모습이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나가는 차의 속도가 빠를수록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졌을까? 이런 곳에 와있으니 나도 느긋해졌다. 아니, 오히려 서두르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가파도를 둘러보는 코스도 몇 가지가 있다. 나는 길을 잘 찾지도 못하고 최대한 섬을 많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깥쪽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돌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방향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그 길은 풍경이 예쁘긴 했지만 보리는 얼마 보지 못하는 길이라, 방향을 틀어야 하긴 했지만.

 

가파도는 표지판의 소개처럼 낮고 소담한 곳이었다. 섬의 상가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선착장에서 거의 정 반대편에서 보인 마을에서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작은 식당이나 카페, 숙소들은 거기에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을조차 옛날에 쓰던 우물터 같은 것들과 함께 공생하고 있었다. 여행자로서 돌아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좋았지만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직 나에게는 많이 낯선 삶의 모습이다. 게다가 난 육고기를 좋아하니 더더욱 이런 작은 섬에서는 살기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걸었을 때(1시간 가까이) 드디어 보리를 볼 수 있었다. 보리밭은 아니고 가파도의 보리가 워낙 유명하니 관광객들을 위해 길가에 좀 심어둔 것 같았다. 가파도는 바다에 가까이 있는 낮은 섬이라 방패 없이 바람이 그대로 지나가는 지 제주도 본섬보다도 바람이 세게 느껴지는 곳이었는데, 그 덕에 보리를 훑고 가는 바람소리가 아주 아름답다. 길을 가다 멈추어 서서 보리가 흔들리는 소리를 한참 듣고 있었다(이렇게 여유 부릴 때는 아니었다). 물결치는 모습도 너무 예뻐서 느린 배속으로 실컷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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