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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여행인/어바웃 섬띵

[제주도 생일 여행] 2-3. 행복은 가까이에

by 이냐니뇨 2024. 6. 29.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정상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숨을 고른 뒤 발걸음을 옮겼다. 가방 무거운 게 싫어서 물을 500ml 생수 한 병만 챙겨 왔는데, 더운 날씨에 생각보다 땀이 너무 나서 목이 너무 말랐다. 물을 한 모금씩 아껴 먹어 가며 천천히 내려왔다.

 

관음사로 올라가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많은데, 성판악 주차장에서 관음사 주차장까지 만오천 원 정도의 택시비가 든다. 시간도 들고. 이미 성판악 코스를 한 번 경험해 본 뒤라 아쉬울 게 없어 같은 코스로 내려와 바로 차를 픽업해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마음의 여유가 좀 더 생겼는지 올라올 땐 보이지 않던 예쁜 풍경들이 보였다. 같은 코스여도 반대 방향에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나무가 시야를 가리지 않은 덕분에 멀리 마을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실컷 즐기면서 내려올 수 있었다. 날은 더웠지만 마음이 시원해지는 풍경.

 

 

 

 

 

사람들이 관음사 보다는 성판악 코스로 하산하길 선호하는 이유는, 관음사 코스에 돌이 많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 쓰고 나면 내려갈 땐 다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데 흔들리는 돌을 밟고 발목을 접질리게 되거나 미끄러지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등산 스틱은 필수이다. 무릎 건강을 위해서도, 다른 부상을 막기 위해서도. 그리고 넘어지는 경우를 대비해 가능하면 등산 장갑도 끼고 가면 좋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오니 어느덧 오후 3시. 원래는 메밀국수를 파는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브레이크 타임에 걸렸다. 여기뿐 아니라 3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식당이 워낙 많다. 게다가 너무 더워서 밥을 먹고 싶기보단 시원한 걸 먹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주차장 바로 맞은 편에 관음사 편의점이라는 가게가 하나 있어 홀린 듯이 달려갔다. 가격이 싼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냉장고에 놓인 포카리스웨트는 나에게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차가운 음료수를 들고 나와 가게 앞 계단에 걸터앉아 신나게 들이켰다.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다 비우고 나니 드디어 살 것 같았다.

 

 

 

 

 

어차피 밥 때를 놓친 거, 숙소에서 쉬면서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근육통에 너무 시달리지 않도록 숙소에 가서 따뜻한 물을 받은 뒤 욕조에 몸을 푹 담갔다. 마트에서 샀던 청귤주스 하나 들고서. 몸이 노곤노곤하게 풀리는 기분이 참 좋았다. 그리고 욕조물과 주스의 "뜨차" 조합도 너무 좋았다.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정을 시작했으니, 반신욕 후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저녁을 준비했다. 야외 부엌이 있는 숙소인 데다가 야외에 테이블도 놓여 있어서 고기 구워 먹기에 딱이었다. 날도 선선하니 좋았다. 장 봐온 흑돼지 오겹살이랑 고사리, 젓갈이랑 갓김치에 쌈채소를 세팅해 두고 제주도 특산 막걸리를 맛보기로 했다. 마라도 방풍 막걸리랑 가파도 청보리 막걸리. 크으. 식당에서 먹었으면 몇 만 원은 들었을 텐데, 이만큼 먹는 데에 2만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먹으니 마음 편히 술도 마실 수 있고. 마트에서 산 흑돼지가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았다. 비계도 느끼하지 않고 쫀득쫀득하고.

 

요즘은 지역을 여행할 때 하나로마트에 들러 막걸리를 사다 먹는 걸 좋아한다. 한때는 지역 소주를 열심히 먹었지만(지금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지역 소주는 마트에서나 인터넷에서 구하기 쉬워진 반면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인지, 그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특산품 막걸리가 많이 있다. 인터넷으로 유통하지 않는 경우도 정말 많고. 언젠가 경남 고성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사 먹어 본 "고성 막걸리"가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중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는데, 그 이후 막걸리 찾아 먹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도 색다른 막걸리를 사 왔다. 우도 땅콩이나 감귤 막걸리 밖에 모르던 시절은 갔다. 몇 년 사이에 못 보던 막걸리 종류가 꽤 많이 생겼다.

 

 

청보리막걸리는 구수하면서 상큼하고 방풍막걸리는 향이 그리 진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맛있게 배를 채우고 나니 신나게 셀프 2차. 방에 들어가 과일 안주와 한 잔 해본다. 제주도산 애플망고(하나에 8천 원 정도)랑 블루베리(한 통에 3천 원 정도)로 상을 차렸다. 둘다 너무 달고 실했다. 애플망고를 평소에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서는 매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농산물은 산지직송.

 

 

 

 

 

이렇게 제주도에서 행복한 둘째날이 저문다. 혼자 시골마을에서 머무는 게 조금은 괜찮을까 싶기도 했는데, 이렇게나 꽉 채워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내일도 잘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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