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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도망가자, 포르투갈로

1. 이동만 하다 끝난 하루지만 그래도 좋아

by 이냐니뇨 2024. 6. 2.

코로나 이후 혼자 떠나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여름에 미국 출장+여행을 한번 갔지만, 그건 다른 거니까). 해외에 갈 때도 자가격리가 불필요해지고 이젠 백신 접종 확인서나 진단서 없이 입국할 수 있게 되어 그야말로 하늘길이 활짝 열렸다. 신난 사람들은 공항으로 쏟아져 나온 듯했다.

 

 

이날을 위해 기다렸다 갱신한 여권. 네이비색 예쁘다!

 

 

그 사이 항공편도 많이 없어졌다. 코로나 이전에 생겼던 포르투갈행 직항 비행편이 다시 사라졌다. 항공권 가격도 전 같지 않았다. 특가표 열심히 잡던 나인데 제 값 주고 비행기를 타려니 결제할 때 조금 손이 떨렸다. 더 심각하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전쟁이 발발했고 그 바람에 유럽에 가는 항공 노선들은 러시아 상공을 지나지 않도록 우회하게 되어 비행 시간이 두세시간쯤 늘었다(전쟁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제발 어서 두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멈추길 간절히 바란다). 

 

 

어쨌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참 반갑다.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몹시 예뻤다. 포르투갈은 비가 온다고 했는데 10시간 넘게 날아 본 독일의 하늘은 맑고 파랬다. 뛰쳐 나가 햇빛을 쐬고 싶을 정도였다. 루프트한자는 처음 탔는데 기내식도 그런대로 맛있었다. 기분이 몹시 들떠서 더 맛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독일 항공이라 맛있는 맥주라도 주려나 슬쩍 둘러봤지만, 한국 출발이라 그런 지 한국 맥주를 주길래 그냥 와인을 한 잔 달라고 해서 마시고 잠을 청했다. 이러려고 어제 잠을 아꼈지. 설레서 뒤척인 것도 있었겠지만.

 

 

 

 

유럽을 가면 도시와 숙소 이불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숙소의 경우는 동네마다 세제에 쓰는 성분이 조금씩 달라서 그렇다고 한다). 실로 오랜만에 도착한 유럽에서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익숙하진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그 냄새를 맡으며 비로소 나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나, 정말 유럽에 왔다.

 

실로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라 "Lisbon Arrivals"라는 표지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얼마나 쿵쾅쿵쾅 뛰던지. 연말이라 공항에는 커다란 트리가 서있었다. 언젠간 크리스마스 시즌에 유럽을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렇게 충동적으로 이뤄질 줄이야.

 

 

 

 

 

리스본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포르투갈은 물가가 싼 편이라 우버도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의 일정도 고려해 교통카드(비바 비아젬, Viva Viagem)를 사기로 한다. 교통 카드라고 해서 티머니 같은 단단한 재질일 줄 알았는데 종이로 되어 있다. 훼손되기 쉬워 보여서 조금 겁이 날 정도. 여행 내내 다치지 않게 소중히 지갑에 넣어 다녔다. 평소엔 여행하면 동전지갑만 열심히 쓰는 나인데... 강제 카드지갑 휴대.

 

일정을 고려해 24시간권을 선택했다. 원하는 플랜을 선택해 카드에 충전하는 형태다. 밤에 도착했으니 딱 내일 일정까지 소화할 수 있다. 1회권도 있고 충전 가능한 것도 있는데 일정에 맞춰 고르면 될 것 같다. 24시간권은 11.2유로였는데, 카드 가격이 0.5유로이고 24시간 사용 가격이 10.7유로였다. 늦은 시간이라 지하철 역은 한산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지하철 타러 가는 길.

 

 

역에서 내려 보니 리스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12월의 포르투갈이 비가 가장 많이 온다더니 이렇게 보여주는 구나. 그래도 한국처럼 매섭게 추운 날씨는 아니고 푸근하고 습한 느낌이었다. 사실 비가 와도 좋았다. 회사를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으니까. 한 손에는 내 몸보다 큰 캐리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우산을 들고 길을 걸었다.

 

내린 곳은 숙소가 있는 Rossio 역 피게이라 광장이다. 이쪽이 버스 타기도 쉽고 웬만한 주요 관광지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어서 이동하기 좋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준비되는 곳이니 금상첨화. 내려보니 오늘도 전구가 반짝이는 광장이 날 반겨주어서 이동하느라 피곤했던 게 다 풀렸다. 여행의 매력은 이런 거지.

 

 

 

 

첫 숙소는 여독을 풀기 위해 가격이 조금 있지만 욕조가 있는 곳으로 골랐다. 아늑한 조명에 초록초록한 화장실이 너무 예뻐서 맘에 드는 곳이었다. 늦은 밤이라 식사 시간도 다 지났고 반신욕이나 하고 잠을 청하기로 하는데, 숙소에 놓인 물까지 예뻐서 기분이 참 좋았다. 여기서 열심히 행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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