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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도망가자, 포르투갈로

2-2. 포르투갈이랑 친해져야지(리스본 시내 투어)

by 이냐니뇨 2024. 6. 21.

바쁘던 참에 도망치듯 여행을 온 거라 아무래도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유럽의 분위기에 들뜨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는 게 많지 않으니 아쉬움이 좀 있었다. 급하게 짐을 싸다가 디카 충전기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배터리가 하루보단 오래가는 카메라니까 여분 배터리까지 2개의 배터리로 아껴가며 써야겠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급하게 사온 유심은 제대로 동작을 하지 않았다. 로밍 무료 시대가 열린 게 얼마나 다행인 지. 구글 맵의 존재가 얼마나 행운인 지.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보다폰 대리점 여는 시간만 기다릴 뻔했다. 새 유심을 꽂으니 폰이 그냥 먹통이 되어 버려서 어젠 아무것도 못했다.

 

 

하여튼 산타후스타 엘리베이터를 타고 리스본 상부로 올라왔으니 근처를 슬슬 걸으며 돌아보기로 했다. 어제 비 오는 밤의 모습만 잠깐 봤으니, 여기저기 살펴보며 정식 인사를 하는 느낌으로. 바닥에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꽃모양의 돌이 사랑스러운 길거리였다.

 

보슬비가 내리니 운치 있는 리스본의 거리.
세심하고 귀여운 바닥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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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궁금해하던 곳은 Betrand 서점(Livraria Betrand)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서점이라고 기네스 북에도 오른 곳. 몇 년 전 헝가리에서 요리책을 가져온 게 너무 좋아서 괜찮은 게 있으면 요리책을 기념품으로 하나 사 볼 요량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요리책은 사지 못했다. 생각보다 영문으로 된 책이 얼마 없었고 난 포르투갈어를 할 줄 모르니 마음에 드는 책이 없었다.

 

그렇지만 책방은 몹시 운치 있고 널찍하고 다양한 책이 놓여 있었다. 관광객이 붐비는 상업적인 곳일까봐 조금 걱정했는데 비수기의 아침이어서 그랬는지 몹시 한가로웠다. 한쪽 구석에 보드 게임이 있기도 하고 문구류도 있기도 해서 좀 더 생활감이 느껴졌다. 연말답게 크리스마스트리도 있고 장식들도 귀엽게 놓여 있어 반가웠다. 더 이상 종이책을, 아니 텍스트마저도 읽지 않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 소담하게 서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왠지 기특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서점에서 나와 시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구시가지 골목을 구경하면서 바닷가 방향을 향해 걸었다. 길치라 어차피 효과적인 루트로 길을 찾지는 못하는데, 그러다 보니 우연히 발견한 예쁜 골목들이 좋아서 가끔 가만히 방향성만 가지고 걷길 좋아한다. 이번에도 바닷가가 보이는 방향으로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천천히 떠돌았다. 시내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많았다. 리스본 시내는 화려하거나 웅장하다기보다는 조금 낡고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했다. 길을 걷다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도 발견했다.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라, 여기까지 나와 동행(?) 한 것이 몹시 반가웠다.

 

 

 

 

 

걷다 보니 "핑크 스트리트(Pink Street)"라는 곳도 있었다. 바닥이 쨍하게 핫핑크로 칠해진 길이 예뻐서 사진도 찍고 걸어도 보았는데, 알고 보니 유흥가라고 한다. 리스본 밤문화의 중심지 같은 곳이라고. 나는 아침에 간 덕분에 평화롭고 사람도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화로운 핑크 거리는 그저 예쁘기만 했다.

 

 

 

 

 

시내에는 귀여운 트램도 지나다닌다. 개나리색의 오래된 트램이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리게 하는데, 매우 정겹다. 리스본 시내의 색감은 왠지 오후의 해가 만드는 오렌지빛 같은 따듯한 느낌. 유럽을 올 때마다 많이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나라도 이렇게 정겹고 옛스러운 분위기를 조금 더 보존하는 곳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든다.

 

얼마 전 <지구마불>이라는 예능에서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출연진들도 겨울에 포르투갈을 간 걸 보고 많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저 사람들 나랑 똑같이 비수기에 저길 갔네, 하면서. 거기서는 날씨가 좋긴 했지만. 오래 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방송에서 만나도 같은 모습을 간직하는 것도 유럽 도시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생기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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