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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노르웨이 3대 트레킹 도장깨기

10-2. 마지막 피오르드, 게이랑에르

by 이냐니뇨 2023. 7. 1.

 

 

게이랑에르에는 오전 10시쯤 도착했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왔으니 게이랑에르에선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찬 바람을 맞으며 배 위에서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지 도착하자 마자 날이 출출해졌다. 게이랑에르에 늦은 오후까지 머물 생각이라 일정에도 여유가 있어서 카페에 들어가 간단히 요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카페를 찾아 마을을 둘러보는데, 언덕 아래로 보이는 호수와 마을의 모습이 그림같이 예쁘다. 아주 작은 마을인데도 피오르드를 보러 몰려드는 사람들 덕분에 집보다도  커다란 크루즈가 들어 오는데 그 큰 배보다도 훨씬 커다란 산들이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내가 사는 곳과 크기의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도 키가 큰가,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해본다.

 

 

 

 

호숫가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맑은 공기와 이 풍경을 즐기고 싶어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날이 좀 흐려지기도 했고 6월의 노르웨이 아침 기온이 제법 낮아서 따뜻한 밀크티를 마셨다. 밀크티를 홀짝홀짝 마시고 핫케이크를 집어 먹으며 가져간 책을 읽고 앉아 있었는데, 이번 노르웨이 여행은 이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몹시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시골 마을에서 딱히 다른 할 것이 없기도 하고 예쁜 풍경 아래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아서 책을 읽으며 앉아 있거나 산책을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로서는 이렇게나 여유로운 여행이 처음이라 행복감이 마음 깊이 남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게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당충전을 마치고 온기도 채웠으니 마을을 구경하러 길을 나섰다. 마을 곳곳 눈이 녹아 내린 물줄기가 흐르고 녹음이 파릇한 데 지붕이나 벽이 빨간 집이 많아서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었다. 나는 골목 구석구석 다니며 둘러 보기도 하고 물줄기를 따라 산책을 해보기도 하며 마을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을 산책 중에 발견한 신기한 메뉴. 페리 선착장 바로 앞에 있던 한 식당에 순록 피자라는 메뉴를 파는 것이었다. 순록 고기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몹시 궁금했던 나는 단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르웨이에서 만든 필스너와 함께 먹는 순록 피자. 우리나라 피자처럼 토핑도 푸짐해서 마음에 들었다. 중간 중간 보이는 고기가 바로 순록 고기였다. 누군가 말 고기가 질기다는 말을 해 준 적이 있어서, 이것도 그렇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맛있기만 했다. 순록 고기는 양고기랑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향도 양고기랑 비슷했는데 피자에 꽤나 잘 어울렸다. 저렇게 먹고 당시(17년도) 가격이 258 크로네였는데, 이 정도면 가격도 합리적인 편이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구석구석 둘러본 게이랑에르를 떠날 시간. 올레순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올레순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페리를 타고 또 다시 육로로 이동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가는 길이 몹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를 여행하는 내내 경치가 좋다, 예쁘다, 멋지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힘이 있었다. 가는 길은 절벽같은 구간도 꽤 많았는데 버스 기사님은 놀라운 운전 실력을 보여 주셨다.

 

가는 길에는 게이랑에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뷰 포인트도 있었다. 이 곳에서는 잠깐 내려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깜짝 선물을 받은 것 같아 몹시 행복했다. 전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속도를 늦춰주신 적이 있는데, 노르웨이 버스는 낭만이 있나보다. 덕분에 투어를 신청하지 않고서도 달스나바(Dalsnaba) 전망대를 가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만난 전망대에서의 풍경.

 

 

노르웨이는 호수나 바다로 끊긴 길이 많아 페리가 일반적인 대중교통 중 하나인데, 가끔 버스가 육로가 끊긴 구간에서 사람들을 페리 터미널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이 때 안전 상의 이유로 모두 내려서 페리 좌석에 앉아 가야 하는데, 페리 티켓을 별도로 끊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버스가 통째로 페리를 타기 때문에 그냥 시키는 대로 배에 오르면 된다. 이렇게 가다가 다음 페리 정류장에서 버스도 나도 내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 가던 길을 가는 시스템이다. 이것도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버스와 페리의 타이밍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것도 신기했다.

 

 

버스로 가다가 타게 된 페리.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데, 장거리다 보니 길에 사고가 나서 차가 막히기도 했고 뭐 걱정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그치만 절벽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노련하게 운전해주신 우리의 기사님은 놀랍게도 도착 예정 시간에 딱 맞추어 올레순에 나를 내려 주셨다. 덕분에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여행의 막바지. 마지막 게이랑에르 피오르드(Geirangerfjord)까지 보고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올레순(Alesund)

으로 올라간 뒤 국내선을 타고 오슬로로, 그 뒤 국제선을 타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뚜벅이인 데다 이동할 시간도 부족하니 이런 묘한 일정이 나온다. 하루 묵어가며 구경하고 가면 좋을 뻔했는데, 버스 시간표도 비행 스케줄도 도와주지 않아 그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올레순이라는 새로운 동네를 잠시나마 보고 갈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언젠간 노르웨이 북쪽 지방도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아쉽지만 노르웨이는 이제 안녕!

 

 

평화로운 새벽의 오슬로 공항.

 

 

P.S.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런던을 경유하는 비행기였다. 영국 물가도 비싸기로 이름깨나 날리는 곳인데, 노르웨이 여행을 하고 나니 귀여운 수준이었다.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히드로 공항에서 기쁜 마음으로 아침을 사먹었다. "런던 프라이드" 맥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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