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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여행인/산과 함께

[수도권 반나절 여행] 본격적인 북한산 등반(숨은벽 능선 ~ 백운대)

by 이냐니뇨 2023. 4. 9.

처음 와 본 북한산에 반해 사진 찍어가며 천천히 올라갔다. 중간중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정말 예술이었다. 초반 길은 조금 경사도가 있어서 크게 어려운 구간은 없었다. 다만 대부분 돌길이고 바위 위를 걸어야 하는 가파른 구간이 조금씩 있어서 보폭을 넓혀 걸어야 하기도 한다. 난 그게 이 코스에 매력이라는 생각은 든다. 길은 누가 봐도 길이라 방향을 찾기 어렵지 않고, 가끔 작은 갈림길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 갈림길은 결국 만나서 가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가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표지판을 따라 1시간 정도 걷다 보니 높다란 나무 계단이 하나 나왔다. 최고기온이 13도인 추워진 날씨였는데 꽤나 가파른 길을 걷다 보니 티 하나 입고도 덥기 시작했다. 거,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구만.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고 저 멀리 도시가 보이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싼 산들도 보인다. 미세먼지가 없었다면 더 또렷하게 보였을 텐데, 필터를 끼운 것처럼 흐린 부분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조금 들었다. 그래도 산속에 있으니 공기가 좋지 않아도 먼지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작은 바위 구간 하나를 지나고 보니 거짓말처럼 능선이 나타났다. 올라오면서는 보이지 않던 긴 능선이 어느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것을 보니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느껴졌다.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있는 암벽이다. 이 암벽에서 펼쳐지는 암릉을 숨은벽능선이라고 한다. 명칭은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가려져 숨어 있는 듯 잘 보이지 않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 암릉은 경기도 고양시 효자동 방면이나 사기막골 방면에서만 제대로 보인다. 초급자도 등반할 수 있는 암릉이지만 양옆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어 주의하여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북한산 숨은벽 [北漢山-壁]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왼쪽 사진 가운데에 보이는 게 숨은벽 능선이다. 거짓말 같이 나타남.

 

 

숨은벽 능선을 따라가는 길. 좁은 길을 따라 가느라 등산스틱을 쓰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한 번씩 옆에 있는 로프나 난간을 잡고 가야 할 만큼 가파른 구간이 있으니, 수시로 등산스틱을 접어 가방에 넣고 올라갈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등산 장갑은 반드시 챙길 것! 철제 난간을 잡아야 하거나 줄도 단단해서 맨 손으로 집으면 다칠 수 있다. 목장갑이라도 준비해서 올라가야 한다.

 

 

숨은벽 능선, 숨은 계곡 구간은 암릉구간이라 길이 험하고 뚜렷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암벽등반 코스로 보이는 바위 옆으로 가다 보면 난간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추락 위험"이라고 쓰여 있기도 하고 백운대로 향하는 길인데 내려가야 하다니 좀 무서워졌다.

 

내려가다 보면 곧 숨은 계곡이 등장하는데 여기는 모두 돌길이고 구조물이나 표지판도 나오질 않아서 길이 더욱 헷갈린다. 그치만 딱히 갈림길도 없어 그냥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싶어 계속 걸어 보았다. 다행히 다른 분의 블로그 후기에서 봤던 약수터가 나타났는데, 여기에도 물길과 등산로가 딱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가는 도중에 갈림길은 없으니 돌 사이에 평평한 부분, 계단 같이 생긴 부분을 잘 찾아서 가보자. 괜히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앞에서 본 표지판의 방향을 믿고 올라가야 한다. 잘 다져진 길이 아니라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구간이지만, 그렇게 2~30분만 가면 곧 돌계단도 나오고 표지판도 다시 등장한다. 사실 다른 등산객이 없어서 좀 당황했는데 다행히 딱 한 분이 뒤에서 나타나셔서 안심했다. 길을 잃어도 혼자 잃지는 않겠구나.

 

 

 

 

드디어 표지판 등장!

저 표지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이없게도 오랜만에 나타난 표지판에는 "백운대 0.5km"라고 쓰여 있었다. 단 500m를 남겨 두고야 길을 알려주는 너란 북한산.

 

이 표지판을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매우 어려움" 구간이 등장한다. 여기부터는 스틱을 접어서 가방에 꽂아 두고 가야 한다. 나는 접어 넣기가 귀찮아 낑낑대며 들고 가려고 했는데 답답했던지 지나가던 산신령님께서 스틱을 가져가지 않는 게 오히려 나은 구간이라고 알려 주셨다. 젊은 사람이 산에 오르는 게 기특한 지 산행을 하다 보면 꼭 한 번 이런 산신령님이 나타나시는데, 이런 분들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쨌거나 이후부터는 가파른 계단과 난간이나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하는 바위 구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가파른 길에선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내려오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길이 좁고 가팔라서 잘못 오르면 자칫 다른 사람과 충돌해 다칠 수 있으니 조심조심 가야 한다. 너무 가파른 구간에는 바위에 약간씩 홈을 내어 발을 디딜 수 있게 해 두었으니 아래를 잘 보면서 오르면 된다. 비록 0.5km지만 2~30분 정도가 걸리는 난이도 있는 구간이니 체력이 부족할 것 같으면 갈림길에서 표지판이 나타났을 때 잠시 쉬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올라가는 게 좋다.

 

 

백운대로 오르는 마지막 구간.

 

 

836m, 백운대 정상에 도착했다. 평일 이른 시간에 출발했는데도 정상에는 이미 사람이 꽤 많이 있었다. 정상석이 서 있진 않고 사진처럼 누워있는데다 그 옆에는 태극기가 높이 펄럭이고 있다. 공간이 좁아 난간도 있고 해서, 아쉽게도 정상석이랑 인증샷을 찍기 쉬운 곳은 아니다.

 

나는 내 뒤에 서 있던 아저씨께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해 보았으나 태극기만 한 장 찍고 가시겠다며 거절 당했는데, 어느덧 자연스럽게 내 앞으로 밀고 들어가 셀카를 찍고 계신 걸 보았다. 하여튼 그 뒤에 계시던 비슷한 또래의 여자분이 카메라를 넘겨받아 사진을 찍어 주셨는데, 평소 인증샷에 진심인 분이신지 가만히 서있는데 셔터를 미친 듯이 눌러주시고 중간 점검까지 해주셨다. 덕분에 등산 인생 최초로 인생샷을 건질 수 있었다.

 

 

태극기 아래로 펼처진 경치도 정말 예술이다. 날이 맑으면 저기에서 강화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 강화도는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산 아래 꽤 멀리까지 보였고 안개는 다 걷혀 있었다. 그게 아니어도 눈앞에 보이는 인수봉, 내가 걸어 올라온 숨은벽 능선 같은 것이 펼쳐져 있는데, 그 경치가 정말 장관이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인다.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차서 땀이 식으며 꽤나 추워졌다. 가지고 갔던 플리스 자켓이랑 바람막이를 다시 껴입고 앉아서 따뜻한 차와 함께 가져간 도시락을 먹었다. 산 위에서 먹는 차의 맛은 한 번 맛보면 잊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조금 무거워도 한 여름이 아니면 꼭 따뜻한 차를 싸 가는 편이다. 대신 너무 많이 먹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 수 있으니 적당히만 먹어야 한다.

 

 

정상의 맛! 스타벅스에서 녹차를 보온병에 담아 왔다.

 

 

백운대는 살면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배경지식이 없어 그 말에 큰 감흥 없이 산에 올랐는데, 올라와서 보니 왜 그런 말이 나왔는 지 잘 알겠다. 고도가 높아 쉬이 날이 흐려지거나 안개가 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때에도 산 아래쪽보다는 안개가 좀 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깎아낸 듯한 봉우리들과 도시의 아파트들, 그리고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도 모두 잊혔다. 그저 감탄 또 감탄할 뿐. 정말 장관이었다.

 

 

 

 

만경대(위)도 보이고 인수봉(아래)도 보이는 백운대 정상에서의 풍경.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3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삼각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경치가 비현실적으로 좋아서 넋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풍경이다. 이래서 부모님들 프사에 산 사진이 있나보다, 이해하게 된 오늘.

 

 

 

 

잠시 풍경을 감상하며 사진도 찍고 도시락도 먹고 쉬다 보니 주변이 시끌시끌해졌다. 단체 야유회를 온 것 같은 직장인 무리가 나타났다. 상무님, 지사장님 하면서 서로 사진 찍어 주고 서로 칭찬하기 바쁘다. 이런 분들과 함께 있으면 몹시 피곤해질 것이 분명하므로 슬슬 하산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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